지구로부터 760광년 떨어진 물병자리 알파별sadalmelik을 궤도 비행 중인 프로메테우스 우주선에서 출발한 캡슐이 솔라리스 바다 위에 떠 있는 우주 정거장에 도착한다. 붉은 태양과 푸른 태양으로 불릴 뿐 이름 없는 두 개의 태양 사이를 공전하는 솔라리스의 위치는 알 수 없다. 이 의도적인 모호模糊는 대략의 거리와 위치만 추정될 뿐 정확히 알 수 없는 행성 솔라리스의 모호한 공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지구에서 뻗어나간 솔라리스 관한 탐사와 연구의 모호와 맞닿는다.
솔라리스가 발견된 지 백여 년, 솔라리스에 관한 탐사와 연구, 가설과 이론은 솔라리스학이라는 분야를 만들었다. 행성 대부분을 이루는 바다는 처음에 유기적 물질, 거대한 유동성 세포이자 무시무시한 단일체, 전前생물학적 형태, 고도로 진화된 유기체, 원형질의 기계, 항상성을 갖춘 바다, 천재적인 바다, 중력을 조절하는 젤리에서 단 하나의 생명체로 이루어진 행성으로 알려지게 된다. 폴리테리아 신시티알리아 메타모르파polytheria syncytialia metamorpha로 행성을 분류해 이름하기도 하는데 여기에 1,700억 톤의 단일 개체에 불과하다는 인간의 인식이 깔려 있다. 솔라리스와 접촉을 통해 수학적 언어로 소통하는 사고력을 지닌 괴물에서 거대한 원형질 형태의 두뇌, 그 두뇌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의 본질에 대해 무수히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대규모의 이론적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는 가설에 이른다. 그리고 생각하는 바다, 하나의 거대한 전자 두뇌에서 종교적인 색채를 띤 우주의 수행자, 현인, 자폐증적인 바다, 새로운 교모 세포종이라는 의견까지 본격적으로 자료를 수집한 지 칠십팔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그동안 우리가 명확하게 확인한 지식이라고는 전부 부정否定의 영역에 속하는 내용뿐이었다.' 라는 자각과 별개로 두 개의 태양이 교차하여 뜨고 지는 행성 솔라리스의 하늘과 바다는 음침한 붉은빛, 신비로운 분홍빛, 맹렬한 붉은색, 거대한 선홍빛, 적갈색이나 자줏빛, 보랏빛, 붉은빛과 검은빛으로 채색되거나 짙은 자주색을 띤 황금색, 할로겐 버너의 불꽃처럼 눈부신 광채를 내뿜으며 시시각각 변한다. 여기에 변형성 원형질의 바다는 산수목체, 신장체, 메가버섯형체, 미모이드, 대칭체, 비대칭체, 척추형제, 급변성체와 같은 용어를 붙인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내곤 한다.
이틀째 되던 날 늦은 밤, 우리는 남극 가까운 지점까지 도달했다. 푸른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저물고 있었고, 동시에 반대편 수평선 위로는 구름 주위가 선홍빛으로 물들며, 붉은 태양의 일출을 예고하고 있었다. 광대한 바다 위로 펼쳐진 텅 빈 하늘에서 금속처럼 번쩍이는, 섬뜩한 푸른색과 은은한 진홍빛 불꽃이 맹렬히 충돌하고 있었다. 바다 또한 두 태양 사이의 힘겨루기에 휘말린 듯, 둘로 쪼개어져 한쪽은 수은처럼 반짝였고, 다른 쪽은 선홍빛을 내뿜었다. 그 순간 하늘의 정점에 떠 있는 제일 작은 구름을 뚫고 파도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광선 한 줄기가 파도 위의 반짝이는 거품을 무지갯빛으로 물들였다. 푸른 태양이 저물자마자 북서쪽 인근,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지점에서 대칭체가 출몰했고, 이 광경이 계기판에 포착되었다. 대칭체는 붉은색으로 하늘과 원형질이 만나는 곳에서 거대한 크리스털 꽃처럼 빛을 반사했다. 하지만 정거장이 경로를 바꾸지 않았으므로 십오 분쯤 지나자, 루비로 만든 거대한 등불처럼 붉은 광채를 내뿜으며 흔들리던 대칭체는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몇 분 후 가느다란 기둥 같은 물체가 수 킬로미터 상공의 대기권을 향해 조용히 솟아올랐는데, 그 기저부는 행성의 굴곡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두 개의 빛깔로 갈라진 한 그루의 나무처럼 한쪽은 타는 듯한 붉은색, 다른 한쪽은 밝은 형광빛을 내뿜으며 쑥쑥 솟아오르던 이 대칭체의 최후는 우리가 목격한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았다. 먼저 기둥의 윗부분에서 사방으로 뻗어 나간 가지의 끝자락이 버섯 모양의 거대한 구름으로 뒤엉키고 합쳐지면서 태양의 뜨거운 불길 속으로 소용돌이치며 자취를 감추었다. 반면 수평선 삼 분의 일을 차지할 정도로 육중하고 거대한 아랫부분은, 여러 개의 덩어리로 쪼개지면서 바닷속으로 아주 천천히 가라앉았다. 대칭체의 마지막 흔적이 우리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 뒤였다. 385-387쪽.
지구보다 20퍼센트 크나 육지는 유럽 대륙보다 작고 나머지는 변형성 원형질인 바다가 무엇이든, 두 개의 태양이 엇갈려 뜨고 지면서 만드는 빛의 스펙트럼과 빛 알갱이의 서로 다른 농도가 부딪혀 빚어지는 농담 속에 갑자기 솟구쳤다 사라지는 빙하 같은 형성체의 출현과 소멸이 일어나는 역동적 풍경, 매번 달리 만들어지는 형성체의 발생과 생장, 확산과 소멸의 개별적 움직임은 그것 자체가 인과적 풍경으로 그 어느 행성에서도 볼 수 없는 솔라리스의 고유한 경관이다.
행성 솔라리스에 관한 그 모든 탐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캘빈이 솔라리스의 경관을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은 솔라리스를 하나의 객체, 연구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또 다른 주체로 인식하면서 가능한 일이다.1) 소설 속에서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솔라리스가 보낸 손님, 그의 기억 가장 어두운 곳에서 길어 올려진 에프-형성물인 '하레이'를 대하는 그의 태도와 인식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경관이 대상을 마주하여 온몸으로 느껴 마음에 그려지는 어떤 것이라고 할 때 대상은 단순히 주체와 객체로 나뉜 바라보는 또는 탐구하는, 아니면 해석해야 할 사물이 아니라, 감각하는 자와 대상을 하나의 관계, 맥락 속에 놓아 감각할 때 이뤄진다. 그리고 이 감각은 역설적으로 관계가 모호하므로 가능해진다. 모호하다는 것은 사물과 인식 사이에서 흔들리며 유보留保의 태도 취하는 모습이 아니겠는가.
소설 솔라리스 속의 공간을 인식적 차례로 나누면 지구, 프로메테우스 우주선, 우주 정거장 | 캘빈의 무의식 공간, 행성 솔라리스 | 바다가 된다. 이것을 다시 소설에 등장하는 공간으로 치환하면 크게 우주 정거장과 행성 솔라리스로 나뉘고, 세분하면 우주 정거장 내 도서관 | 지구, 우주 정거장의 나머지 공간, 캘빈의 방 | 캘빈의 무의식 공간, 행성 솔라리스 | 바다로 가름할 수 있다. 소설에서 지구가 실제로 묘사되지 않지만 백여 년 동안 솔라리학의 책이 빼곡한 우주 정거장의 도서관은 솔라리스를 향한 지구인의 탐구와 실패, 용기와 좌절, 욕망과 패배가 담긴 역사이자 인식적 한계를 상징한다. 캘빈은 이 편견의 방에서 때로 편안함을 느끼곤 한다. 우주 정거장의 나머지 공간은 솔라리스를 향한 인간의 다양한 행동이 일어나는 사건의 공간이다. 어쩌면 솔라리스 바다의 현현인 하레이와 캘빈이 묶는 방은 솔라리스와 접촉에서 새로운 국면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이 방에서 캘빈은 꿈의 형태로 무의식의 인식적 변화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미자막 한 가지, 우주 정거장은 솔라리스의 땅에 붙어 있지 않고 바다 위에 떠 있다. 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아직 솔라리스와 지구는 완전한 접촉에 이르지 못했고, 지구는 솔라리스와 그만큼의 거리로 이해할 수 없는 관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하레이가 스스로 완전 소멸을 선택하고 사라진 후, 바다와 직접 만나면서 캘빈은 비로소 솔라리스에 대한 앎의 영역이 아니라 이해의 영역으로 옮겨간다. 경관은 앎의 영역이 아니라 이해의 영역인 것이다.
'바다의 압도적인 현존과 강력하고 절대적인 침묵, 그리고 파도를 통해 규칙적으로 호흡하고 있는 이 존재의 무게감이 내게 이토록 강렬하게 느껴진 적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다....나는 완전히 압도당한 상태로 망연히 바다를 바라보면서, 도저히 다다를 수 없을 것만 같은 관성의 영역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점점 몰입을 거듭하면서 나는 이 보이지 않은 유동적인 거인과 하나가 되었다.', 444-445쪽.
1.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 몸짓들 : 현상학 시론, 안규철 옮김, 워크룸 프레스, 5쇄 2023, 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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