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형태나 재료를 언급하는 게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그것보다 먼저 이야기해야 할 또는 되어야 할 것이 있다. 어떠한 공간이 어떠한 쓰임을 갖는가는 여러 요인으로 정해진다. 주변 관계와 맥락 속에서 자연스럽게 정해지기도 하고 홀로 자신의 쓰임을 위해 무언가를 요구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 쓰임에 맞게 공간이 구성되고 시설이 붙어 쓰임을 위한 준비를 갖춘다. 그러나 설계가가 생각한 쓰임이란 자주 관념적 또는 개념적 바램일 뿐 현실은 이를 배반하기 일쑤다. 대표적인 예가 야외무대라 불리는 야외극장이다. 평면으로 근사해 보이는 그것이 제대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다. 그것은 극장이란 물리적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공연公演이라는 행위行爲와 관람觀覽이라는 참여參與를 통해 더불어 완성되며, 이 모든 일은 자발적이거나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획과 실행이 프로그램을 통해 드러나는데 일상에서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야외무대를 예로 들었지만, 어떠한 공간의 쓰임이란 특히 외부공간의 쓰임이란 외려 단순하고 명확하다. 걷거나 앉거나 둘 사이에 수 많은 망설임이 있다.
학생회관 뒤뜰의 공간 성격은 내부가 연장된 외부 공간으로 설계 용어로 '휴게 공간'이다. 휴게라고 얘기하지만, 학생들의 휴식은 앉아 얘기하거나 먹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떠들고 외치고 먹고 마시고 들여다보고 생각하고 쓰고 기다리다 눕고 무리 지어 속삭인다. 헤드폰을 쓴 채 홀로 떠다니는 영혼 하나도 물론 거기 함께 있다. 역동적 휴식이다. 그렇다면 공간도 시설물도 그러한 쓰임에 맞는 것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이 공간은 보이는 혹은 보는 장소가 아니라 공간 속으로 들어가 마음 가는 대로 무엇이든 허우적거릴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한다'라는 당위가 정말 그러한지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질문은 공간의 맥락 속에서 당연히 그러한 활동이 일어나는 곳이라는 결론으로 그리해야 한다는 것이라기보다는 학생회관 내부의 학생을 어떻게 외부로 불러낼 수 있는가. 들어오도록 할 것인가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대단한 무엇이 없더라도 즐겁고 편하게 쉬며 노는 공간이라면 맥락과 실제 쓰임에 차이가 없는 적절한 공간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설계는 명백한 맥락과 희미한 가능성 사이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고 이뤄진다.
이번 시공도 가온의 대표와 그의 팀이 까다로운 시공에 많은 수고를 했다. 관리처장 교수와 건축팀 그리고 조경 담당 선생의 지지와 지원이 없었으면 힘든 프로젝트였다. 용골龍骨은 완성되었으니 이제 팥배나무와 소나무, 황매화와 산수국이 벌어진 틈을 메워 공간을 잘 감싸주기를 바랄 뿐이다. 또 있다. 데크감싼벽에 어떠한 그림이 그려질지 기대된다. 이렇게 겨울 초입에 끝나 학생들이 북적일 이곳의 풍경은 내년 봄이나 되어야 알 수 있겠다. 그라피티와 사람들, 어떠한 공간은 사람이 없으면 완성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