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설계하면서 한번 정리된 캐드 평면을 뽑아서 등받이너른긴의자 디자인 낙서를 한다. 계단 참에 들어갈 식재상자는 열연강판 T10을 디귿으로 접고 막으면서 참 쪽은 열어 초화류를 심는다. 배수로의 뚜껑 | 트렌치도 열연강판으로 생각했는데 실장이 바닥 포장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바닥과 같은 고흥석에 길게 구멍을 내 덮는 것으로 정리된다. 세 개의 등받이가 있는 너른사각데크는 그 세 개의 등받이 말고 중간에 단 차이를 이용한 등받이와 데크감싼벽과 만나는 쪽을 기울여 해바라기의자sunbed로 만든다. 그러니까 데크에는 모두 네 가지 기울기의 등받이가 있고 여덟 면의 등받이가 있다. 데크감싼벽의 두께는 500mm다. 그리 높지 않지만, 두툼하고 묵직하게 감싸 데크와 함께 단단하여 힘 있는 공간을 만든다. 노출면의 구멍 | 디콘은 메우기로 한다.
이천이십오년 구월 열엿새 | 드러나다
데크감싼벽의 앞쪽 거푸집을 떼어내니 벽의 전모가 드러난다. 중간에 터질까봐 모두 마음을 졸였는데 잘 나왔다. 거푸집에서 기름이 묻어나온 아쉬움이 남는다. 이어 쪽문으로 나가는 계단의 날개벽과 이어지는 화단벽의 거푸집 작업에 들어간다.
이천이십오년 구월 열여드레 | 대다
목재널을 고정할 100 x 50, T2 스텐레스스틸 각관을 댄다. 조경 담당 선생의 제안으로 각관 넣은 자리에 빗물이 빠지도록 콘크리트를 따낸다. 설계 때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다. 노출콘크리트 작업에서 콘크리트 쪽이 나가는 것에 신경을 써야하지만 나가버린 쪽의 흠은 바위에 난 구멍이거니 하고 될 수 있으면 그냥 놓아 둔다. 현장에서 시공하는 분들께 그리 말하는데 슬쩍 모르게 메워지곤 한다. 그리고 화단벽과 이어지는 계단 날개벽 거푸집 작업이 끝났다.
이천이십오년 구월 스무닷새 | 결합結合하다
실시설계에 들어가면서 실장이 너른사각데크의 가구를 굳이 짤 필요가 있는가 자문한다. 그래서 그랬다. 이번 너른사각데크는 가구 없이 콘크리트로 데크 판을 만들고 그 위에 장선만 깔아 데크널을 붙이기로 한다. 하중과 콘크리트 물량을 줄이기 위해 이피에스블럭으로 속을 채운다. 다른 한 켠은 긴의자 목재널 작업이 시작됐다. 긴의자에 바스라로커스 48 x 50 각재에 나사 구멍을 내고 다시 육각머리가 들어갈 머리 구멍을 내야한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목재널과 콘크리트 몸통 사이를 20으로 맞추려 했는데 조금 더 벌어졌다.
이천이십오년 구월 서른 | 심다
그 사이 데크판 콘크리트 타설이 끝나고 거푸집을 떼어냈다. 콘크리트 면을 갈아 다듬고 있다. 건축에서 하듯이 매끈하게 갈아 발수제를 바르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곱게 갈아 마감한다. 이러면 콘크리트 반족할 때 넣었던 작은 돌 | 종석이 반짝이며 드러난다. 긴의자와 너른의자의 목재널 작업이 진행 중이고 대왕참나무도 심겼다. 마지막에 심겨진 것이 수형이 다른데 루브라참나무Quercus rubra 란다. 나무는 가끔 그런다. 비숫한 수종의 다른 나무 한 두 그루가 무리에 섞여 들어오고는 한다. 수형이 멋져 그냥 둔다. 아니 더 멋있어졌다.
이천이십오년 시월 초이레 | 깔다
바닥 포장 공사가 시작됐다. 처음 계획은 600 x 600, 두께 50mm, 잔다듬으로 마감된 고흥석을 깔려 했는데 방수 공사에서 무근콘크리트를 너무 두껍게 친 까닭에 두께 30으로 깔게 되었다. 화강석 판석의 최소 두께가 50은 되야하는데 건물의 출입문 높이와 배수 구배 때문에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이고 결정이다. 비가 와 물 먹은 콘크리트가 짙은 색을 띠면서 묵직하다. 군더더기 없이 용골을 드러내고 있는 현장을 지켜본다.
위치 | 서울시 성북고 안암로 145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학생회관 뒷뜰
면적 | 1,182 m2
발주처 | 고려대학교 관리처 건축팀
설계 기간 | 2025. 05. 28. _2025. 08. 27.
함께 한 사무실 | 조감도와 투시도 _01프로젝트
공사 기간 | 2025. 08. _2025. 11. 예정
시공 | 주) 가온에스디씨
'그려진 것과 만들어진 것 사이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서소문역사공원뿐 아니라 거의 모든 프로젝트에서 설계와 시공의 차이는 간극의 거리만 다를 뿐 어떻게든 나타난다. 그것은 땅과 도상이 일대일로 치환되지 않아 생기는 조경 설계가 가진 내재적이고 근본적인 한계다. 도면이 생각 | 개념과 사물 | 공간의 차이를 줄이려는 일이라면 시공은 설계 | 도면과 사물 | 땅의 차이를 줄이는 일이다. 이렇게 보면 설계란 개념이라는 추상이 설계 행위로 만들어진 도면과 시공이라는 물리적 구체화를 통해 공간과 사물 그리고 경관이라는 실체를 드러내고 만드는 일이다. 여기서 단계마다 벌어지는 근본적인 차이를 줄이려는 노력이 작동하지 않을 때 혹은 안팎에서 다양한 압박, 강제, 훼방, 방기放棄, 문제 제기 따위가 영향을 미칠 때 차이는 두드러진다. 다시 말해 설계와 다른 공간과 경관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려진 것과 만들어진 것 사이에서 이미 벌어진 차이에 관해 설계하는 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도면은 텍스트가 아니다. 도면은 전문 분야에서 일정한 규칙에 따라 프로그램이나 ‘제도기를 써서 기하학적으로 나타낸 그림’으로 만들려고 하는 사물의 규격과 재료, 방법과 과정, 관계와 결과를 그리고 땅의 기준과 좌표, 위치와 위상位相이 표기表記된다. 그래서 도면은 명백한 지시指示를 담아 그린 자와 만드는 자가 의사 소통할 수 있게 둘 사이를 이어주는 연장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시의 성실한 이행과 도구道具를 잘 사용하는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몫이지 도구의 몫은 아니다. 물론 잘못 만들어진 도구라면 지시 | 설계와 이행 | 시공에서 차이가 생기지만, 이를 바로 잡기 위한 여러 경로의 확인이 지시와 이행 사이에서 오고 가고 도구는 고쳐 그려진다.
그래서 도면은 해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표기와 꼼꼼한 독해讀解를 전제前提로 하고 독해는 시공이라는 행위를 전제한다. 그런데 전제된 행위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표기만 남은 도면이란 무엇인가. 만약 도면이라는 연장이 도구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기호로써 기호와 기호가 얽혀 짜인 직물織物이라면 어떠한가. 그린다는 행위로 놓고 볼 때 도면은 덧대고 덧칠한 유화는 아니다. 한 번의 붓질로 먹의 농담이 번지는 수묵화도 아니지만, 낱낱의 도면은 날실과 씨실이 되고 이것으로 짜인 도집을 한 장의 타피스리la tapisserie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색색의 실이 텍스트는 아니지만 그 실로 짜인 타피스리의 문양과 그림은 하나의 텍스트인 것처럼. 이것은 ‘조경하다’라는 땅 위에서 벌어지는 행위를 양피지羊皮紙 le parchemin에 새기는 일에 비유하는 것과 상대를 이룬다.
이렇게도 볼 수도 있다. 문장은 서로 다른 뜻을 가진 낱말과 낱말이 만나 이루어지고 이 문장과 문장이 이어져 문단을 이룬다. 이렇게 엮인 한 다발의 문단은 하나의 이야기 즉 텍스트가 된다. 그렇다면 한 장의 도면을 하나의 낱말이나 문장으로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모인 도면과 도면이 구조물을 세우고 시설물을 놓으면서 공간이 만들어진다. 이 공간에 나무와 풀이 심어져 경관을 만든다고 했을 때 이것을 지시하는 도집을 하나의 텍스트로 또한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리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으나 도면과 도면이 이어져 만들어낸 상상의 공간과 경관은 하나의 텍스트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 텍스트를 어떻게 읽는가는 저마다의 몫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