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로 술을 마시고 때때로 걷는다 _06 | 제주올레를 읽다
· 연장 _07 · 마지막회 | 기계식 연필과 제도용 펜
· 고양이와 초벌그림
· 그래도 그는 고래를 꿈꿨다 _20
· 인디안식 기우제
· 팔월 첫째 둘째 세째 주 노동요 선곡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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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로 술을 마시고 때때로 걷는다 _06 ]
제주올레를 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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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는 지난봄 명도冥途로 걸어간 서명숙 이사장에 의해 2007년 9월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발족하고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경계인 시흥리에서 광치기해변까지 1코스 개장을 시작으로 2012년 21개의 코스로 바다와 오름, 마을과 밭을 이어 제주도 전체를 한 바퀴 도는 도보 길로 만들어졌다. 이어 2022년 27개의 코스, 437km에 이르는 길을 완성한다. 19년이 지난 제주올레는 '걷다'라는 행위와 '길'이라는 공간이 만나 '그곳을 걷는다'라는 행위와 장소를 동시에 새롭게 규정하였으며 단순히 여행 방식의 변화가 아닌 아마도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한다. 걷는다는 것이 새로울 수 없고 길은 어디에나 있으나 오롯이 하나의 이름으로 연결되는 체계를 갖는 길과 그 길을 걷는 가치의 공유는 이 땅에서 제주올레 이전에 없었다. 공원과 정원, 길과 광장을 설계하는 조경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제주올레는 설계의 한계를 넘어선 작업으로 단순히 길을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작동하며 올레꾼 개인에게 내면을 성찰하는 계기를 만들며 동시에 더 많은 사람이 함께 걷고 지역 사회와 나누려는 문화 사회적 행위로 확장은 경이롭다.
시작점과 종점을 잇는 제주올레 길을 지도에서 보면 중간중간의 목적지 아닌 목적지를 거치며 한없이 꾸불꾸불 돌아간다. 이것은 목적지를 향해 최단 거리로 빠르게 가려는 단축과 효율이라는 길의 진화를 이끌었던 모든 동력을 거스르며 걷는다는 것 자체를 목적지로 내재한 길이다. 길의 끝, 도착이 목적이 아니라 어떠한 방식으로 목적지에 도달하였는가 묻는 과정이 앞선 길이다. 기존의 길을 따라 만들어졌고 끊어진 길을 힘겹게 잇고 닫혔던 문을 열어 만들어진 까닭에 어쩔 수 없이 생겨난 결과이지만, 목적지를 멀리 두고 돌아감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돌담과 밭에 자라는 무꽃과 이름 모르는 풀과 하늘, 시시각각 바뀌는 바다의 물색을 살필 수 있다.
제주도 전체의 지형은 한라산을 중심으로 하는 거대한 하나의 산으로 백록담에서 시작해 바다를 향해 완만하거나 때로 격렬하게 흘러내려 경사를 이룬다. 이 지형을 거칠게 나누면 해안가와 평지, 중산간과 한라산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올레길은 중산간의 고도를 넘지 않는다. 해발 고도로 보면 올레길에서 제일 높은 곳이 7-1코스의 고근산 (393.7m) 정상이다. 그러한 까닭에 올레길은 누구나 걸을 수 있는 접근의 범주를 넓히면서 길게 이어져 제주도 전체를 잇는 둘레길이 된다. 그리고 이 길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오름은 제주도가 한라산이라는 단일의 산으로 이루어진 섬이 아니라 크고 작은 오름이 모여 한라산이라는 거대한 산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거꾸로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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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1길 알오름에서 보이는 자미봉과 종달리 바다. 지미오름은 올레21길이다.
제주올레의 평균 거리는 15.3km로 가파도의 4.2km를 제외하면 대부분 9km에서 길게는 20km를 넘지 않는 4시간에서 7시간 사이 반나절 동안 걷도록 구간이 나뉘어 있다. 길이 평탄하든 험하든 거리는 곧 시간을 의미하고 제주에서 반나절의 시간은 제주시나 서귀포시를 기점으로 각각 코스의 시작점으로 가는 시간과 종점에서 돌아오는 시간을 따져 꼬박 하루가, 며칠씩 이어 걷는 사람이라면 충분한 휴식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거리며 시간이다. 또한 그 시간은 어리거나 노쇠한 몸을 고려한 시간이기도 하다. 제주도 한 바퀴를 이렇게 나눈 코스와 시간은 더 오래 더 자주 제주도를 찾게 만드는 방편이기도 하다. 달리던 차를 멈추고 내려 걷기 시작한 사람들은 이제 더 천천히 놀멍 쉬멍 걸으멍 한다. 여기가 올레다.
제주올레는 새로 만든 길이 아니다. 그러나 그 길은 풀섶을 헤쳐 찾아진 길이고 아무도 걷지 않아 끊어졌던 길을 이었으며 잎맥葉脈처럼 갈래 뻗은 길에서 조심스레 선택해 새로 직조한 길이다. 원래 있던 길인 까닭에 풍경을 거스르지도 밭작물을 헤치지도 물새를 쫒지도 않으며 소란스레 마을을 가로지르지도 않는다. 사람이 자주 여럿이 다니면서 일어나는 영향을 제외하면 어떠한 새로운 물리적 구조의 힘이 가해지지 않은 길은 원래 그러하듯 풍경 속을 미끄러져 지나면서 오름을 넘고 밭을 지나 바닷가 포구에 다다른다. 돌아보면 올레길은 간 곳 없고 그냥 올레, 풀섶길, 꽃섶길, 바닷가 샛길이 지날 뿐이다. 어떠한 생채기 없이 길이 직조되었다는 사실이 다른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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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21길 하도 바닷길 간세 조형물
올레길은 파랑과 주황의 표식으로만 이어진다. 시작점의 간세와 안내판, 말뚝으로 박은 이정표인 화살표와 가는 조릿대나 막대, 나뭇가지, 전봇대에 매달린 댕기, 방목한 말이 나가지 못하고 사람만 겨우 지날 수 있는 굽이문, 중간 스탬프 간세, 드문드문 있는 의자 그리고 도착점의 간세로만 이루어졌다. 야자 매트와 세심한 풀베기로 길을 관리하지만, 물리적 구조물 없이 원래 길을 고스란히 둔 채 가변의 표식으로 길이 만들어졌다. 이 표식은 걸으면서 만나고 의심 드는 곳에 어김없이 자리하고 놓친 길을 되돌려 걷게 한다. 올레길을 걸을 때 지도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은 걸어보면 알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이 표식은 올레꾼 눈에만 선명하여 눈 들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사라진다.
원래 있던 그러나 찾아진 길과 가변의 표식 사이에서 제주올레는 길을 걷는 사람에게 무형의 선형 공간을 머릿속에 만든다. 이 선형 공간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비물리적 공간으로 의식과 사물 사이에 존재한다. 이것을 단순히 표식이 만든 가시적 공간의 현현이라 말할 수 없는 까닭은 제주올레 이전에 산행하면 어느 산길이나 색색의 표식이 있어 능선과 계곡을 이어 길을 잃지 않도록 안내한다. 제주올레의 선형 공간은 그러한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산길과 달리 바닷길과 오름길, 마을 길과 밭길, 풀섶과 돌담이 하나의 길로 끝없이 변화는 풍경으로 세심하게 짜여 부분과 전체를 각각의 코스마다 완결된 한 다발의 풍경으로 직조하여 놓았기에 가능하다.
그래서 제주올레의 경관은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제주도의 경관을 다시 규정한다. 차를 타고 빠르게 지나가거나 한 점에서 바라보는 풍경이란 파편의 경치이며 한순간의 풍광일 뿐이다. 경관은 계절과 날씨, 해의 고도와 달의 주기, 대지의 내음과 숲이 머금은 습기, 나무가 뿜어내는 향기와 해조류의 비릿한 내음으로 달라진다. 이 풍경 속을 천천히 걸어갈 때 우리는 비로소 그곳의 경관을 고스란히 온몸의 감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올레길을 걷는다는 것은 이러한 경관의 변화 속에 자신을 놓는 것이고 앞서 느꼈던 경관에 뒤이은 풍경 속에 자신을 밀어 넣어 온전히 한 다발의 경관을 감각하는 일이다. 제주올레는 만들어지지 않은 까닭에 제주의 풍광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품는다. 아니, 풍광과 하나다. 풍광 속이다. 그 길이 펼쳐내는 풍광은 섬 전체를 아울러 한눈에 한달음에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몇 날 며칠을 꼬닥꼬닥 걸어야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느린 속도로 자주 멈추면서 느껴야 한다. 이랬을 때 우리가 보는 모든 사물은 생동하는 풍경의 주체로 다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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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2길 온평 환해장성
모든 길은 처음 그 길을 개척한 사람과 그 길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과 재화를 통해 이어지고 유지되며 거듭 가치를 가진다. 제주올레도 모든 길과 다르지 않다. 아무도 그 길을 걷지 않는다면 길은 사라져 흔적을 지운다. 제주올레는 처음 길을 만든 사람과 보이지 않게 그 길을 가꾸는 손길과 꾸준히 걷고 또 걷는 올레꾼에 의해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올레길일 것이다. 여기서 물어야 하는 것은 무엇이 그들을 그리고 올레길을 지속적으로 작동시키는가, 이다. 이 질문은 다르게 보면 설계하는 자들의 한계가 무엇인지 묻는 것과 같다. 설계하고 시공했다고 집이 극장이 병원이 공원이 광장이 정원이 작동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것은 설계하는 사람들이 늘 염두에 두고 계획하나 끝끝내 그들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으로 밀어내 버린 것에서 시작한 설계를 뛰어넘는 행위고 그래서 제주올레를 보고 있으면 설계라는 것의 한계와 덧없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제주올레를 만들고 가꾸고 걷는 사람에 의해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는 이 길을 작동시키는 것은 가치에 대한 공유다. '나는 걷는다'라는 단순하고 명쾌한 하나의 가치. 그러나 이 가치는 목표가 아니고 시작이다. 목적이 아니고 방편이다. 그러니 그 가치는 끝없이 깊어지고 한없이 확장된다. 누군가는 걸으면서 침잠하고 또 다른 이는 걸으면서 눈 들어 바다 내음을 맡는다. 그리고 어떤 이는 마을 어귀 퐁낭의 그늘에서 잃어버린 풍경을 찾는다. 걷는 사람과 길 위에 사는 사람이 만나 안부를 묻고 어제와 그제를 더듬으며 역사의 시간 속으로 미끄러져 걷는다. 길을 내어준 자연을 만나 화산재가 흩뿌리던 지질의 시대로 걸어간다. 나로부터 확장된 세계는 제주에만 머물지도 않는다. 규슈와 몽골, 스페인, 그리스, 캐나다, 영국, 스위스, 레바논, 튀르키예, 일본, 대만, 호주를 지난다. '걷다'가 만든 확장된 세계는 보편普遍과 연대連帶로 나아간다.
_2026. 07.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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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1코스 궤적과 도장, 2026. 0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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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2코스 궤적과 도장, 2026. 0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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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숙, 놀멍 쉬멍 걸으명 | 제주올레 여행, 주)북하우스 파블리셔스1판 1쇄, 2008, 2판 7쇄,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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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에서 쓰는 필기도구는 크게 흑연을 쓰는 기계식器械式 연필mechanical pencil | propelling pencil과 먹을 쓰는 제도용 펜technical pen으로 나눌 수 있다. 제도용 펜은 오구烏口 rulling pen | un tire-ligne와 흔히 로트링펜이라 부르는 제도용 펜이 있고 기계식 연필은 홀더leadholder와 샤프펜슬이라 부르는 것이 있다. 로트링이나 샤프는 모두 특정 회사가 만든 상품 이름이 우리나라에서 일반 명사가 되어버린 경우다. 로트링은 독일의 로트링사 제품이고 샤프펜슬은 일본 샤프사의 제품 이름이 그 물건을 지칭하는 통칭이 되었다. 제도에서 최종 도면은 언제나 먹으로 그린다 | 그렸다. 연필로 그리면 먹이 마르는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흘러내리지 않을뿐더러 수정도 쉬워 작업이 편해 보이지만, 같은 이유로 수정할 수 없고 변경하지 말라고는 의지를 담아 까다롭고 수고스러워도 먹을 쓴다. 설계된 것을 직접 만드는 것은 다른 사람의 손을 빌어야 하고 그럴 때 설계의 지시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 방편이다. 그리고 하나의 이유가 더 있는데 보존의 문제다. 흑연은 중력과 시간에 무관하게 그려지나 종이 위에 미끄러지듯 흔적으로 남아 어느 순간 시간에 순응하여 뭉개지고 흐려져 사라진다. 먹은 도구를 수직으로 세워야 하는 중력과 종이의 입자 사이로 들어간 먹의 입자가 종이와 반응해 마르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지만, 한번 그려지면 어느 정도 빛은 바래나 시간을 거슬러 오래도록 남겨진다. 과오와 실수도 함께. 제도용 필기도구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초벌그림을 그릴 쓰는 도구는 볼펜과 만년필이다. 볼펜과 만년필을 포함해 모든 제도용 필기도구의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선의 굵기를 어떻게 구현하는가, 이다. 도면의 선은 굵기가 일정해야 하고 말하고자 하는 것에 따라 다른 굵기의 선으로 그려진다. 까닭에 이십 세기 중반 이후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제도용 필기도구는 0.1 밀리미터 단위로 굵기가 나뉜다. 오구와 홀더도 선의 굵기에 따라 두서너 가지로 나뉘나 그럼에도 원시 제도용 도구인 까닭에 미세한 선의 굵기는 오로지 감각으로 그려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좀 더 쉽게 선의 굵기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용 필기도구의 발전이 이루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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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더는 심心|芯을 갈아 끼워서 사용할 수 있는 기계식 필기도구의 하나다. 우리말로 하면 ‘심잡이연필’ 쯤 되려나. 유럽에서 정확히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6세기 중반에 홀더의 원형이 되는 기구들이 있었다고 한다. 홀더는 샤프와 달리 아주 간단하고 원초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 몸체가 있고 그 안에 심을 넣는 대롱과 대롱에 감싸인 용수철, 그 끝에 심을 잡아주는 심잡이clutch, 선단tip 그리고 반대쪽 끝에 누름단추knob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누름단추에 홀더심을 갈 수 있는 심갈이가 숨어 있다. 문제는 심을 갈고 나서 가루가 대롱을 타고 흘러내려 홀더가 지저분해지고 손에 묻기 때문에 아주 급한 경우가 아니면 쓰지 않는다. 상세도를 그릴 때 굳기 에이치H의 심을 심갈이로 끝이 뾰족하게 갈아서 쓰면 볼펜으로 그릴 때와 다른 세밀한 부분까지 다가갈 수 있다. 홀더심은 연필과 마찬가지로 흑연의 굳기에 따라 다양하고 또한 여러 색이 있다. 홀더도 심의 굵기에 따라 몇 종류 있지만, 제도 작업에서 홀더를 쓸 때 심 끝을 뾰족하게 유지하기 위한 심갈이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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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부리라는 뜻의 오구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서양에서 선 긋는 도구를 뜻하나 동양으로 넘어오면서 도구의 형상을 보고 이름하였던 듯하다. 대부분의 근대 용어가 그러하듯 일본에서 그리 이름하지 않았겠는가. 두 개의 금속 부리가 나란히 마주하고 벌린 부리 사이에 먹을 머금어 일정한 굵기의 선을 그릴 수 있는데 위쪽에 돌림쇠가 있어 이 둘 사이 간격을 조절해 선의 굵기를 정할 수 있다. 같은 재질의 금속이나 나무, 플라스틱의 손잡이가 있으며 원이나 호를 그리는 컴퍼스용 오구가 따로 있다. 자주 먹을 묻혀야 해서 수고스러우나 오구의 미덕은 먹뿐 아니라 다양한 색의 물감을 쓸 수 있다는 데 있다. 단순한 어떻게 보면 원초적 형태의 도구가 가진 매혹은 범용성과 거리가 먼 개인의 숙련에 따라 도구의 기능 아니면 결과가 달라지는 개별성과 우연성일 듯하다. 붓보다 훨씬 범용을 띤 오구는 그러나 정교한 도면에서 여지없이 도구를 들고 있는 사람을 드러낸다. 아니 모든 도구가 결국은 누가 쓰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과 같다. 오구는 이제 극히 드문 예외를 빼면 완전히 사라진 도구다. 제도판 위 한 시대를 뜨겁게 횡단하여 날아간 오구를 기억하며 삼가 먹을 간다. 잘 가시라. 부디 극락왕생하시라.
제도용 펜이라 이름하는 것이 정확한지 모르겠다. 한 번도 그렇게 부른 적이 없다. 그렇다고 글을 쓰면서 로트링펜이라 쓰는 것 또한 허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제도용 펜이 맞나 혹시 제도용필이나 제도필 아나면 기술필이라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도 아니면 오늘날 쉽게 해버리는 테크니컬펜이라 해버리면 되나. 의외로 기술자들은 외래어를 쉽게 받아들인다. 아마 그것이 그들을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든다는 우월이나 낯선 용어를 쓰면서 특별하다는 의식 따위가 거기 깔려 있는지 알 수 없다. 사실 낱말이 무슨 문제이겠는가 만은 말 속에 담은 뜻까지 쉽게 받아들인다는 것이 문제겠다. 외래 용어를 굳이 한국어로 번역하려는 뜻은 그렇게 했을 때 그 사물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물에 이름이 지어지거나 붙을 때의 문제의식이나 무게 또는 감각이 그 사물과 이름을 받아들일 때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이 낯선 사물이 왜 그리 이름 붙었는지 한 번쯤 되물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기술자가 정치나 권력 나아가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쉽게 전락하는 무수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것이 그중 하나가 아닐까 또한 의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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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가 지금의 제도용 펜으로 발전하는데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하나는 선의 굵기를 일정하게 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지속적으로 잉크가 공급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1930년대 만년필과 같은 먹통이 달려 있으면서 다양한 굵기의 촉을 갈아 끼울 수 있는 펜이 개발되고 1950년대 지금과 같은 형태의 제도용 펜이 여러 회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만들어졌다.1) 제도용 펜의 구조는 뚜껑을 열면 대롱촉이 중간 몸통에 끼워져 있다. 이것을 돌려 분리하면 그 속에 다시 대롱촉의 뚜껑이 있고 그것을 돌려 열면 대롱촉의 굵기에 따른 가는 심이 묵직한 추에 달려 있다. 제도용 잉크는 만년필에서 쓰는 잉크와 달리 약간의 점성과 빨리 마르는 성질이 있어 쓰는 동안에 굳지 않게 하려고 심이 달린 추가 위아래로 움직이도록 해 놓았다. 그래서 쓰다 보면 가끔 펜을 흔들어 굳은 잉크를 녹이거나 굳지 않도록 해야한다. 그리고 중간 몸통에 먹통이 달려 있는데 여기에 직접 잉크를 채워 넣는다. 제도용 펜은 오구나 펜과 달리 수직으로 세워 써야 하므로 변환 고리에 끼워 쓰고는 한다. 컴퍼스에 끼워 쓸 수 있는 변환 고리도 따로 있다. 몸통의 끝에 대롱촉을 돌려 열 수 있는 속칭 복스알이라 하는 육각장붓구멍socket | une douille이 있어 대롱촉을 중간 몸통에서 분리하는 데 쓴다. 제도용 펜은 촉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결절 부위에 나사가 있어 돌려 열거나 잠그도록 해 놓은 의외로 단단한 물건이다.
트레이싱지가 만년필의 잉크를 먹어 우굴해지는 선을 따라 여백에 낙서하는 것은 마치 길을 걸으면서 주변의 간판을 쳐다보고 가게를 기웃거리는 것과 같다. 비 온 뒤 웅덩이에 물이 고이듯 생각이 고여 만년필의 촉이 한 곳에 오래 머물거나 자주 지나가면 구멍이 난다. 촉 굵기 1.1의 만년필은 굵은 각인을 남긴다. 뭉뚱그려지고 모호한 생각들이 지나간 흔적 그대로다. 여기서 조금 더 생각이 정제되면 그 반 굵기의 족적을 남기는 만년필이 따라간다. 만년필은 자尺하고 상극이다. 만년필은 오구가 아니다. 제도용펜은 더더욱 아니다. 볼펜은 빠른 생각에 반응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생각을 무화시키고 저 혼자 형태를 잡아 길을 간다. 볼펜은 바퀴가 달려 있다. 한참을 달리다 보면 차바퀴 구르는 소리와 바람 소리 그리고 엔진 소리 이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 풍경도 보이지 않는다. 껄끄러운 트레이싱지 위를 빠르게 질주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유화의 마티에르la matière 기법과 같은 양감을 가지면서 잉크가 덧칠된 곳이 반들반들하게 빛이 난다. 이때 조심해야 한다. 볼펜의 잉크가 마르는 데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며 잘 못 하면 손도장을 찍어 놓은 것처럼 온 계획지에 발자국이 남는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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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un épilogue
예전 신군부 무리가 권력을 잡으면서 방송과 신문, 잡지사를 잡도리해 많은 잡지가 폐간되었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얼마 지난 후 새로운 잡지가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그중에 '마당' 이라는 잡지가 있었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한국 브리태니커 회사의 '뿌리깊은 나무' 와 '샘이 깊은 물' 사이에 뿌리깊은 나무와 비슷한 내용과 형식을 표방한 다른 곳에서 만든 잡지였는데 그 창간호 표지 사진이 손이었다. 옥반지를 낀 손만 가깝게 찍어 내용을 확인하지 않으면 누구인지 알 수 없어 누군가의 그 손이면서 모두의 손을 함축했던 사진이었다. 도구는 결국 그 도구를 쓰는 손의 문제다. 어떠한 손을 가지고 있으며 그 손을 어떻게 단련시키는가. 영화 '브루탈리스트' 의 주인공이 결국 설계가가 아니라 제도사로 생계를 유지했던 것처럼 예전 설계사무실에 공업고등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주로 제도사 일을 했다. 그 미려한 손놀림과 그려낸 도면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이제 그런 도면은 볼 수 없다. 연장도 손도 모두 과거의 일이다. 이 연장에 관한 그간의 조사弔詞는 불가역의 시간을 거스르려는 것은 아니다. 조사란 떠난 이를 기리는 떠나보내는 이의 마음이지 않겠는가. 연장이 그것을 쓰는 손의 문제라고 했지만, 결국 그것은 또한 손을 쓰는 자가 가진 마음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모든 일은 마음이 한다는 광고처럼.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 시집서점 위트앤시니컬 식구들에게 감사하며 그 손의 주인공은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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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와 초벌그림 ]
초벌이고 재벌이고 다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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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따시야 바라시꼬바와 니꼴라예비치 므이시낀 , 2019. 0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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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그는 고래를 꿈꿨다 _20 | 마지막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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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안식 기우제 祈雨祭 ]
그래서 아뜰리에나무라고.. ça alors, l'atelier nam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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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뜰리에나무_2007_2013, 가제본, 201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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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월 첫째 둘째 세째 주 노동요 선곡표 ]
_guns n' roses, november rain
_bon jovi, never say goodbye
_kurt cobain, and i love her
_black sabbath, she's gone
_이주영, 새가 재처럼 날고
_scorpions, always somewhere
_coldplay, in my place
_kiss, i was made for lovin' you
_janis joplin, cry baby
_jasmin tabatabai, another sad song
_bob marly & the wailers, no woman, no cry
_전인권, 가을비
_japanese breakfast, magic mountain
13곡, 60분
' 세상이 불타고 있는데 기우제는 안 드리고 이런 언제 적 노래를... 쯧, 그래서 한 곡 더'
_leonard cohen, famous blue rainc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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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뜰리에나무 ateliernamoo.xyz@gmail.com
+82 2 766 41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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