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장을 다녀오다 _05 | 포항
· 주로 술을 마시고 때때로 책을 읽는다 _05 | 유희경의 '출근 인사'
· 연장 _06 | 트레이싱지
· 고양이와 초벌그림
· 인디안식 기우제
· 유월 마지막 주 | 칠월 첫째 주 노동요 선곡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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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을 다녀오다 _05 | 포항 | 한동대학교 다목적 실내 체육관 신축 공사
[ 장면 _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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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측량도 위 수목 조사, 에이A1, 1/250, 2026. 0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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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한동대학교의 다목적 체육관을 짓는 일이다. 학교 안의 경계 없는 영역에서 조경이 할 있은 건물이 들어섰을 때 동선이며 경관이 주변과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새로 지어진 건물로부터 비롯될 새로운 쓰임의 외부 공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로 귀결된다. 현장 조사는 이 모든 일의 시작이지만, 일을 하다 보면 계획을 먼저 하고 조금 뒤에 현장을 둘러보고 나서 이런저런 수정과 변경을 하곤 한다. 조금 늦은 감은 있으나 너무 늦지 않게 체육관이 들어설 자리며 학교 전체를 둘러본다. 이번 현장 조사는 몇 가지 결정할 사항을 가지고 내려간다. 수목 조사는 물론이고 이식할 나무와 제거할 나무를 정해야 하고 외부 공간 공사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교문을 지나 안으로 조금 들어서서 만나는 솔숲 일부와 바로 옆의 테니스장이 체육관이 들어설 자리고 그 너머에 '하늘소리'라 이름 붙은 기도실이 낮은 동산에 있다. 이 모두는 운동장에 맞닿는다. 토목이 보내준 측량도는 나무의 위치만 표기되어 있을 뿐 무슨 나무가 어느 정도 크기인지는 조경에서 조사해야 한다. 수종은 다양하지 않다. 소나무, 느티나무, 벚나무 그리고 메타세콰이어. 네 주의 메타세콰이어는 도서관 앞 잔디마당으로 옮겨 심고, 소나무재선충이 들어 고사한 소나무는 제거하고 나머지는 이식하기로 한다. 시설관리팀의 팀장은 결국 솔숲이 사라지지 않겠는가 한다. 그 외 대부분의 나무는 상태가 좋지 않거나 이식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옆 기도실 하늘소리 둔덕의 조경석을 노출콘크리트 옹벽으로 바꾸기로 하면서 남쪽 공사 경계가 정해졌고 북쪽 솔숲은 계획안으로 이식되는 나무가 있는 자리까지로 선을 긋는다.
조사는 현장 사진을 찍는 것으로 끝내고 옆에 있는 하늘소리 기도실을 둘러보러 간다. 아이티엠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에 설계했다고 어디 잡지에서 본 듯하다. 십자가를 형상화해 기도실이라는 공간을 만들었다는데 눈높이서 보는 형상은 유려한 곡면이 서로 엇갈리면서 중첩하여 공간을 만든다. 미션스쿨이라 하지만, 믿음과 거리가 먼 자가 볼 때 이즘 세상에 기도가 무슨 소용 있겠는가. 그러나 이 무용無用은 기능과 효율만이 지배하는 이십일 세기에 어떠한 쓰임도 강요하지 않은 까닭에 혹은 단 하나의 유일한 쓰임을 갖는 까닭에 형태적 자유를 부여한 듯하다. 자그마한 동산의 한쪽을 파 들어간 기도실은 그것 자체가 동산의 온전한 일부로 자리 잡고 외벽의 휘몰아치는 곡면은 사람과 바람을 부른다. 그것이 꼭 기도가 아니어도 충분하다. 어두운 복도 천장에 생겨난 빛은 그래서 두 손을 맞잡지 않아도 이미 기도가 시작되었음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알려준다. 밤을 돋아 돌아가기에 시간이 너무 늦어 포항에서 하루 머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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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측량도 위 수목 조사 확대, 에이A1, 1/250, 2026. 0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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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소리, 아이티엠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 2026. 0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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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시장에서 숙소로 가는 중앙로 어느 골목길, 갑자기 노란 벽이 환하게. 2026. 0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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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_02 ]
천안논산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가 초정밀 1:50,000 지도(2005년 판)는 여전히 공사 중으로 나오는 당진대전고속도로로 들어선다. 거기서부터 이정표를 따라간다. 여기 오면 빽빽이 심긴 어린 메타세콰이아숲이 인상적이다. 회의는 길었다. 심의위원들의 자상한 이야기를 듣고, 감독관들의 주의와 당부를 듣는 이 차 회의까지 끝나니 더 늦을 수 없는 오후가 되었다. 오르는 길은 경부고속도로를 타다 미련 없이 중부고속도로 접어든다. 차창을 닫아도 들어오는 아카시아 향기가 어찔하다. 그에게 아카시아를 가르쳐준 그녀에게 오늘은 볕이 너무 좋아 반짝이는 빛알갱이를 볼 수 있다고 마음으로 안부를 전한다. 지지난주였던가. 늦은 아침 커피 한 잔을 올려 마시고 동으로 동으로 달렸다. 전날 늦은 밤까지 달렸던 기척 없는 국도에서 피곤을 이기지 못해 들어갔던 여관은 물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통리역 지나 남쪽으로 접어든다. 북쪽으로 달리면 신리 너와집이 나오고 더 오르면 영화 '봄날은 간다'를 찍었던 아주 작은 대숲을 만날 수 있다. 기억은 그렇게 말한다. 다시, 가곡천을 따라 동쪽 끝에 오니 호산이다. 거기서 칠 번 국도AH6*를 따라 남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추억과 동경이 짧은 순간 스친다. 이 길을 따라 북으로 오르면 화진포 지나 명파리 지나 금강산으로 갈 수 있다. 원산 거쳐 북녘땅을 지나면 블라디보스토크과 하얼빈, 이르쿠츠크와 바이칼(아! 바이칼)을 만나고, 서쪽으로 더 달리면 모스크바와 벨로루스의 민스크까지 나아간다. 혹 그 길 어디쯤에서 아무르강을 따라 올라온 쇠를 벼리던 '불의 검'의 아라를 만날지도 모른다. 아니면 제3인터내셔널에 참가하던 식민 조선의 그들이던가, 그도 아니면 시베리아로 끌려가던 도스도옙스끼, 플랫폼을 뚜걱뚜걱 걸어가 제국의 침략을 구멍 내버린 안장군을 혹여 만나게 될까,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떠났던 그들도 이 길을 따라갔던가. 그게 아시안하이웨이 육 번 도로다. 언젠가 그대가 전화를 걸어도 그가 대답하지 않는다면 거기 있을 게다. 겨우내 울란우데와 이르쿠츠크의 날씨를 확인하면서 보냈었다. 기상 조건이 안 좋아 올겨울은 떠날 수 없다는 얼토당토않은 핑계를 말뚝 삼아 눌러앉아 있었다. 그 겨울이 다 가고, 매화로 시작해 벚꽃에서 아카시아까지 피는 늦봄과 이른 여름의 경계에서 아멜리아 호드리게스와 관숙이, 한영애와 파이스트, 마리아 베따니아와 말로가 함께 한다. 소리를 높인다. '꽃잎 날리네 햇살 속으로…바람 손잡고 꽃잎 날리네…' 노래 한 소절에 꽃잎 하나, 가사는 이어지는 게 아니라 꽃잎 지는 한순간의 풍광을 그렇게 읊고 있다. 노랫말처럼 '눈부신 날들이 잠시 머물다 간다.' 속절없이 듣다가 에게해의 푸른빛과 갈대 사이를 뛰어다녔다는 그녀, 바위에서 그 푸른 바다로 몸을 던졌다던 그녀가 궁금해졌다. ··· 여름날이면 북부해수욕장에서 해가 지도록 놀았다. 그거였던가. 가슴이 답답할 때면 가까운 서해도 아니고 동해로 차를 몰고 달리는 몽유병이 생긴 것. 그것도 해결 안 되면 파란 벼 가득한 논과 이어지는 먼 산을 봐야만 하는, 그 여름의 열기 속에서 겨우 마음을 놓는 것은 지워지지 않는 몇 개의 풍경과 늘 보던 초록의 완강함 속에서 편안해지기 때문인가. 기억의 풍경이 현재의 삶을 보듬어주는 위로를 기꺼이 받는다. 그래도 이건 낯설다. 해안가 도로 따라 널려 있는 미역 말리는 분주한 손길과 느린 걸음. 이제 꽃내음은 사라지고 미역 냄새 가득 들어온다. 칠 번 국도를 계속 달린다고 바다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 빠른 길은 내륙으로 확장했고, 7-1번쯤 되려나 바닷길을 놓치지 않고 갈아타야 계속 바다를 볼 수 있다. 그렇게 남쪽으로 남쪽으로 달렸다. 덕천리 원자력발전소, 죽변항, 수산리, 산포리, 오산리, 덕산리, 망양리, 척산리, 울진공항, 구산리, 직산리, 후포항, 백석리, 고래불, 사진리, 축산항, 경정리, 석리, 노물리, 창포리, 하저리, 강구, 구계리, 부흥리, 월포리, 이가리, 칠포리, 우목리까지. 그저 남쪽으로 달렸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포항 북부해수욕장이다. 알고 있나, 진짜 여행은 지금 달리는 이 차를 멈추고 거기서 내려섰을 때 시작되는 것을. 이건 그저 풍경 속을 흘러가는 것일 뿐이다. 마치 아무것도 남기지도 물들지도 않고 들을 지나, 계곡을 타고, 봉우리 너머 흘러가는 바람과 같은 것. 차가 길게 멈춰 선다. 비상등을 켜고 차창 문을 내린다.
_2011. 06. 01.
* 위키백과, 아시안하이웨이6AH6.
'AH6 is a route in the Asian Highway Network. It runs from Busan, South Korea (on AH1) to the border between Russia and Belarus. Altogether it is 10,475 km (6545 miles) long. For much of its Russian stretch, AH6 coincides with Trans-Siberian Highway and, west of the Ural Mountains, with European route E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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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_03 ]
'국립등대박물관 및 호미곶 주변 일대 리디자인 계획 용역' 제안서 작업을 한 적이 있다. 십여 년도 더 전 일이다. 포항은 어쩔 수 없이 씁쓸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제안서 발표 때 심사위원들의 토호 세력 특유의 적대적 눈빛과 냉소가 잊힐 만하면 한 번씩 다른 장소에서 똑같이 반복되어 그때를 환기하는 까닭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분심은 그래봤자 계획안의 빛나는 생각을 가리지 못한다.
'바다와 마주한 광장의 특별함은 광장의 비어 있음과 바다의 비어 있음이 더 큰 허공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파도의 역동성을 광장에 담기로 한다. 평면에서 기존 광장의 형태를 유지하지만, 바다와 면한 광장은 해수면과 같은 높이로 낮춘다. 중간부터 바다를 향해 경사져 내려가는 광장은 파도가 치면 그 경사를 따라 물이 올라온다. 마치 백사장에 파도가 올라오는 것과 같다. 마주 보는 상생의 손 중에 육지에 있는 것은 경사가 시작되는 안쪽으로 옮긴다. 광장의 양쪽으로 생기는 둔덕은 하나의 시각적 틀로 바다를 품듯이 더 가깝게 해를 품는다.' *
바다가 몰려 올라오는 파도가 철썩이는 광장이라니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 '국립등대박물관 및 호미곶 주변 일대 리디자인 계획 용역 제안서' 중에서, 아뜰리에나무, 2010. 0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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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호미곶 초벌그림, 2010. 0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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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호미곶 계획 입단면, 2010. 0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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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호미곶 계획 스케치, 2010. 0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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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_04]
아이는 죙일 혼자 바다에서 논다. 노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튜브에 의지해 물 위를 떠다니거나 문방구에서 산 조악한 스노클을 가지고 스노클링을 한다. 물론 오리발은 없다. 그러나 성능은 꽤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파도가 쳐 막대에 물이 차면 뿜어내는 것이 고래가 된 기분을 느끼기도 했던 모양이다. 눈에 넘쳐나는 수평선과 피할 수 없는 햇살, 쇳조각처럼 몸에 달라붙는 모래가 여름 한 철 아이를 위로했다. 이웃 마을, 포탄과 총알을 만드는 회사에서 여름 한철 바닷가에 캠프를 차려 튜브나 음료를 갖춰놓고 언제나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아이는 회사에서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와 혼자 죙일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 바닷가 오른쪽 끝에 쇳물을 녹이는 용광로가 있는 공장이 기묘한 풍경으로 바닷가 끝에 자리 잡고 있다. 허술한 시골 바닷가 끝자락 지평선과 수평선이 교차하는 자리에 솟은 그것은 모든 상상을 압도하며 아이에게 그 여름'들'의 각인된 풍경으로 남아 있다. 그가 숀 탠의 '잃어버린 것'*을 좋아하는 것은 이 풍경의 기억과 상관있을지 모른다. 거기가 북부해수욕장이라 했다. 지금은 영일대해수욕장이라 불린다.
* 숀 탠shaun tan, 잃어버린 것, 사계절,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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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북부해수욕장으로 불린 영일대해수욕장, 2026. 0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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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로 술을 마시고 때때로 책을 읽는다 _05 ]
어제의 풍경은 소멸하고 내일의 풍경이 나선계단을 타고 오르는 라흐마니노프 2번 3악장에서 아다지오로 피어난다.
유희경, 출근 인사, 핀드,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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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혜화동 로타리 서편에 동양서림이 있고 안쪽 나선계단을 오르면 시집서점 위트 앤 시니컬이 있다. 거기 서점지기이기도 하고 시인이기도 한 그가 있다. 그는 매일 아침 출근 인사를 한다. 출근 인사를 쓴다. 매일의 인사가 포개져 책이 되었다.
나선계단 위에 서면 시집이 빼곡한 서가가 둥글게 빙글 돌아간다. 착시錯視다. 나선으로 돌던 몸이 멈춰도 달팽이관은 계속 돈다, 둥글게. 돌아서면 서점지기의 자리가 있고 안쪽에 사가독서라는 방이 있다. 읽기도 낭독도 수업도 노래도 하는 곳이다. 그 구석에 매니저 경화씨의 자리가 숨어 있는 곳으로부터 로터리 쪽으로 창이 이어진다. 창 너머 예전에 분수대가 있어 여름 한철 장했다. 둥근 콘크리트 구에서 물이 뿜어져 나왔었다. 출근 인사는 여기서 발화한다. 인사말은 서가를 둥글게 감싸다 빙글 나선계단을 타고 내려가 건널목를 차례로 건너며 로터리를 한 바퀴 빙 돌고 어느 날은 대학로를 타고 원남동으로 가거나 또 다른 날은 명륜동을 지나 창경궁 거쳐 창덕궁이 있는 안국동 쪽으로 빠져나간다. 내쳐 달려 서울역에서 기차 타고 부산으로 내닫기도 한다. 안드로메다는 안 가나 묻는다면. 뉴욕이나 베를린도 가는데 왜 아니겠어.
출근 인사는 언제 피어나나. 아마 시인이 아침 에그스크램블을 만들 때부터 아니면 출근길 버스 안에서. 그도 아니면 어제의 마지막 독자로부터. 그것은 아무도 모를 일. 그러나 출근 인사는 매일 그 아침, 그 시각에 피어나고 건네지고 회자하고 답인사가 돌아오는 나선의 궤적을 그리며 돈다. 그래서 출근 인사는 어제, 그제, 지난주를 건너 지난 계절을 훌쩍 넘어 어렸을 적 안부가 오늘 전해지기도 한다. 시간은 앞서 달려 한 주 또는 한 달 앞으로 내닫기도 한다. 책은 십 년의 시간을 삼백육십오 일 더하기 하루의 시간으로 나열했다가 다시 네 개의 점괘로 십 년을 나누었다. 서점지기 중 한 분이 역술인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출근 인사라는 신묘한 점괘가 나선의 시간 궤적 안에서 혼재되었다가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른다. 그러나 출근 인사라는 점괘가 가리키는 방향은 늘 한 곳이다.
서점의 상수가 서가가 있는 공간과 서점지기라면 변수는 매달 매주 매일 발행되는 책과 매 시각 찾아오는 독자다. 혜화동 로터리와 이어지는 네 길의 길과 가로수와 교통표지판이 위트 앤 시니컬 외연 풍경의 상수라면 하늘의 빛과 바람, 비와 눈 그리고 가로의 버즘나무가 계절 따라 색이 달라지고 습습한 어느 날 특유의 냄새를 뿜어내며 풍경을 바꾸는 변수다. 서가의 풍경은 새로 찾아오는 책으로 늘 어제와 조금 다른 조금만 다른 풍경을 만들고 거기에 시인이 가꾸는 화분의 식물 또한 아주 조금씩만 다른 풍경을 만들지만, 언제고 같은 풍경은 없다. 이 조금만 다른 풍경 속으로 끝없이 새로운 등장인물들이 나타나면서 극적인 무대가 만들어진다. 마치 무언극처럼. 출근 인사는 이렇게 매일 새로운 풍경에 관한 안부이고 기록이며 권유다. 읽기의 세계로 정중한 권유. 하나의 시가 만든 풍경 속으로 함께 들어가길 바라는 청유. 그래서 그 풍경은 일상의 풍경이고 시의 풍경이며 문학의 풍경이고 문화의 풍경이며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풍경이다. 그러나 결국 매번 사라지는 소멸의 풍경이기도 하다. 어제의 풍경은 소멸하고 내일의 풍경이 아무도 없는 불 꺼진 위트 앤 시니컬에서 울려 퍼지는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 3악장에서 아다지오로 잉태된다. 오늘 새로 태어난 풍경을 출근 인사는 어김없이 펼쳐 그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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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장 _06 ]
트레이싱지tracing 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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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 mm 흰 트레이싱지, 2026. 06.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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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싱지는 투사透射가 가능한 반투명 용지translucent paper1)의 하나다. 보통 계획지로 불리며 설계의 초기안을 그리는 종이로 인식되지만 이십 년 전만 해도 청사진2)을 굽기 위해 설계 원도를 작도하는 종이였다. 컴퓨터와 관련된 일련의 전자기계 장비의 등장으로 트레이싱지와 청사진을 중심으로 하는 모든 설계 제도 작업 환경이 바뀌었어도 트레이싱지는 여전히 일부 설계가들에게 계획과 디자인 작업에서 꼭 필요한 도구이자 재료다. 트레이싱지는 종이의 역사에서 나타난 여러 종이와 좀 다르다. 대부분 종이가 그리든 쓰든 인쇄하든 온전한 최종 결과물로 존재하지만, 투사 기능에 기인한 것이고 또 그러라고 만들어진 까닭에 트레이싱지 위의 작업은 무언가로부터 시작된 미완의 단계 또는 다음 단계를 위한 과정으로써 매개의 역할을 한다. 적어도 설계의 과정에서 보면 트레이싱지에 그려진 그림은 거듭 그려지는 그림의 한 과정으로 존재한다. 트레이싱지가 청사진을 위한 원도로 그려졌을 때도 도면 자체의 의미도 있겠지만 청사진을 위한 인쇄판의 기능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최종 결과물은 청사진으로 묶은 도면집이 된다. 이러한 트레이싱지가 가진 기능은 계획의 과정에서 보면 더 도드라지게 드러난다. 계획 | 설계는 트레이싱지 위로 투사된 대지의 형상으로부터 시작된다. 트레이싱지는 땅을 축소해 책상 위에 올려놓은 도면과 설계하는 사람 사이에서 땅과 생각을 이어주는 매개의 장을 펼쳐 낸다. 그래서 트레이싱지 위에 그려져 중첩된 낱장의 초벌그림을 하나씩 들춰 올리면 생각의 결이 낱낱이 흘러가는 것이 보인다. 거기에 땅의 형상과 풍경의 자세, 떠도는 말과 욕망의 투사가 덧씌워져 있다. 그렇다 트레이싱지는 생각의 피막皮膜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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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 mm 노란 트레이싱지, 2026. 0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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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시민안전체험관 실시설계 도집 중 1층 포장계획도, 청사진, 2004. 12.
1. 한국민족대백과사전 _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2996
위키페디아 _https://en.wikipedia.org/wiki/Tracing_paper
종이는 식물의 세포막을 구성하는 셀 로오스를 분리해 낸 식물성 섬유세포의 집합체인데 여기서 섬유 사이에 공기를 제거하면 반투명 용지가 만들어진다.
2. 위키페디아 _https://ko.wikipedia.org/wiki/%EC%B2%AD%EC%82%AC%EC%A7%84
청사진靑寫眞blueprint은 1842년 영국의 죤 허셜Sir John Frederick William Herschel에 의해 발견된 사아노타입cyanotype이란 사진인쇄 기술을 바탕으로 20세기 초 반투명용지의 생산과 맞물려 공학과 건축에서 도면 인쇄에 주로 쓰였다. 청사진은 햇빛에 잘 바래지 않으며 원도만 있으면 저렴한 비용으로 계속해서 여러 장을 복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3. 이수학, 태도Ⅰ, 아뜰리에나무, 2023, 32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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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와 초벌그림 ]
제대로 뽑고 있는 것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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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력 중인 제주 중문 주상절리대 바탕 도면을 지켜보는 나스따시야 바라시꼬바 , 2019. 0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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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꼴라예비치 므이시낀과 서울 공평동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 초벌그림, 1/300, 2023. 0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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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안식 기우제 祈雨祭 ]
뭐야, 아뜰리에나무잖아... quoi! c'est l'atelier nam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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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월 마지막 주 | 칠월 첫째 주 노동요 선곡표 ]
_pierre barouh, samba saravah
_radiohead, high and dry
_seat belts, cosmic dare | pretty with pistol
_the honeydrippers, sea of love
_2ne1, go away
_王菲, 你在终点等我
_박규희, 椿姫の主題による幻想曲
_queen, too much love will kill you
_buika, no habrá nadie en el mundo
_anne sofie von otter, dis, quand reviendras-tu?
_정민아, a man in the yellow shirt
_buena vista social club, veinte años
_asōtō union, think about' chu
_souad massi, ghir enta
_josé van dam, por una cabeza
_한영애, 안부
16곡, 70분
앵콜bis! 그럼 한 곡 더
_omara portuondo, amor de mis amores
'설마 노동요가 꼭 흥겨운 리듬이어야 한다는 편견을 갖고 계신 것은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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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뜰리에나무 ateliernamoo.xyz@gmail.com
+82 2 766 4128-9
02880 서울시 성북구 창경궁로43길 16, 4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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