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브제un objet
「명사」
「1」 『미술』 초현실주의 미술에서, 작품에 쓴 일상생활 용품이나 자연물 또는 예술과 무관한 물건을 본래의 용도에서 분리하여 작품에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는 상징적 기능의 물체를 이르는말. 상징, 몽환, 괴기적 효과를 얻기 위해 돌, 나뭇조각, 차바퀴, 머리털 따위를 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_https://stdict.korean.go.kr
nom masculin
[Art contemporain] Élément à trois dimensions, emprunté, assemblé ou créé de toutes pièces par l’artiste, constituant tout ou partie d’une oeuvre.
(Exemple : ready-made ; objets surréalistes ; assemblages…)
명사 남성
[현대미술] 작품의 전체나 한 부분을 구성하는 것으로 작가가 차용, 조합하거나 창작한 삼차원의 요소
라후스사전 _https://www.larousse.fr/dictionnaires/francais/objet/55366?q=objet#54989
n. m. 10 [미술] 오브제
프라임불한/한국외대 새한불전자사전 v.2.8.0(4), 동아출판, 2011.
오브제un objet는 조경의 말은 아니다. 오브제는 현대 미술이 개념을 정의하고 키워온 말이다. 말뿐이겠는가. 구상 조각과 선동적 조형물 사이에 수많은 스펙트럼의 오브제가 미술관과 로비, 거리와 공원에 놓여 있다. 확장된 미술의 개념과 행위는 공간과 장소, 형식과 시간을 넘나든다. 그러니 현대 미술의 관점에서 오브제가 미술관에서 정원을 거쳐 공원과 거리로 나온 것은 당연하다. 허면 조경의 관점에서도 그것은 마땅히 그러한가.
만들어지는 모든 것이 그러하듯 정원과 공원도 그 시대의 시간 안에서 시작한다. 이 시간 안에 지리적 위치와 기후, 사회와 관습, 문화와 풍습, 체제와 계급, 철학과 사상, 노동과 자본, 기술과 예술을 포함해 언급되지 않은 모든 것을 내포한다. 그렇다고 정원과 공원이 시대를 대변한다 할 수 없지만, 이것을 통해 어느 시대에 어느 곳의 모습을 가늠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다. 현대 미술이 낳은 오브제가 조경의 공간인 정원이나 공원으로 들어온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하나의 가설이 필요하다. 이 가설은 논증할 수 없는 비약과 심한 억측으로 이루어졌지만, 새로운 가설 또는 더 나은 가설을 위한 낙서 정도로 보면 좋겠다.
정원술庭苑術을 끌어안은 조경의 역사에서 19세기 이전 정원을 기술할 때 동양과 서양을 나눌 수 있지만 19세기 이후 동양은 빼어난 정원 문화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정체되어야 했다. 까닭은 19세기 이후 서구의 제국주의와 일본의 맹목적 서구화를 등에 업은 동양권 안에서 제국주의로 식민화되어 자신의 동력으로 정원술에서 조경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유입된 의식 안에서 조경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조경을 이야기할 때 어쩔 수 없이 서구 조경의 역사를 마치 조선의 역사인 양 얘기하게 되는 이유다.
조경의 역사로 보면 기원전 사천 년 전 페르시아 정원에서 18세기까지 정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저하게 지배계급의 전유물이었다. 18세 후반 산업혁명에 따른 도시화와 노동자, 농민의 열악한 도시 생활 환경과 프랑스혁명으로 빚어진 왕족과 귀족에 대한 위협이 유럽 전역으로 퍼지자 그들이 자신들의 정원을 노동자, 농민에게 내어주면서 공공 정원un jardin public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이것이 미국으로 건너가 19세기 중반 공원un parc이 만들어진다. 이후 정원은 지배계급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보편의 공간으로 가능성이 열렸다. 여기에 또 하나 중요한 문화 요인이 있다. 유럽에서 17세기에 경관이라는 개념을 발견하게 되고 이것이 단순히 아름다운 정원 풍경에 한정 짓지 않고 자연과 인간, 도시를 함께 바라보는 인식적 시선의 확장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조경이 가능했다. 물론 동양은 이미 6세기에 경관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었지만 서구의 폭력에 의한 세계 질서의 재편에서 동양의 이러한 경관 개념은 내적 동력과 자신의 방편으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공공 정원과 공원이 만들어지기 이전 정원이 지배계급의 전유물이었다는 말은 정원이야말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그 어느 곳보다 잘 반영된 곳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것을 루카치georg lukács의 역사철학 관점에서 세계와 자아가 분리되지 않은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정원이 자연에 기댄 인간의 이상향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할 때 이 이상향은 단순히 향기롭고 보기 좋은 곳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려는 세계와 바라보는 세계가 분리되지 않은 완결된 형식이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궐 밖 저곳의 삶과 무관하게 적어도 그들의 정원에서 세계와 자아는 분리되지 않은 하나이어야 했다. 이것은 지역의 문화와 시대의 양식에 차이는 있어도 동양과 서양의 구분은 없어 보인다.
'존재의 총체성이 가능하려면, 형식이 강제가 이나라 불확실한 동경으로 내부에서 잠자고 있는 형상화되어야 할 모든 것이 표면으로 나타나야, 즉 의식화될 수 있어야 하고, 또 지식은 덕목이 되고 덕목은 행복이 될 수 있어야 하며, 그리고 아름다움이 세계의 의미를 분명히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1)
19세기 이전 정원을 어떻게 이보다 더 정확히 설명할 수 있을까. 루카치가 얘기하는 그리스 문화와 이어지는 기독교 문화의 완결된 문화 구조가 가진 선험적 좌표와 형식을 모든 문화의 정원이 그러하다 말할 수 없지만, 19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모든 정원은 완결된 구조와 형식을 갖췄다. 이 말은 정원을 만들고 바라보는 자의 자아와 그것이 투영된 세계로서 정원이라는 물리적 실체가 일치하는 적어도 분리되지 않으려는 부단한 노력의 결과가 정원이라 주장할 수 있지 않을까. 이때 정원을 구성하는 시설물과 점경물點景物까지 이 완결된 구조 속에서 세계를 말하는 상징과 은유가 된다.
조경에서 정원을 이야기할 때 여전히 파라다이스un paradis나 아르카디아une arcadia, 무릉도원武陵桃源이나 이상향理想鄕을 이야기하지만 19세기에서 20세기를 거치면서 세계와 자아가 철저하게 분리되었듯 완결된 구조로서 정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원은 이제 개별적이고 파편화된 각각의 이야기만이 존재한다. 그래서 지배계급의 공간에서 노동자, 농민, 시민, 인민의 공간인 공원은 하나의 이야기에 수렴되는 구조가 아니라 수많은 의견 대립과 이해 상충의 결과인 미완의 열린 결말을 가진 구조가 되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오브제가 들어온다.
현대 조경에서 오브제의 가치는 쓸모없음無用에서 나온다. 기능으로 볼 때 오브제는 공원을 둘러싼 의견 대립과 이해 상충에서 그 무엇과 관계 맺지 않은 그것만의 무용의 완결성으로 존재한다. 완결된 형태를 갖춘 쓸모없는 것, 무용성으로 공원의 모든 것을 포용하는 완충 공간을 형성하고 그렇게 만든 공간과 경관을 통해 개별적이고 독자적인 이야기를 만든다. 이것은 상징과 은유가 사라지고,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기능과 효율이 전부인 세계에 대한 또 다른 고전적 저항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19세기 이전의 정원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아니다. 오브제는 무용을 통해 새로운 쓰임으로 나아간다.
오브제의 쓰임은 조경이 만든 공간 일반一般의 시설물이 갖는 물리적 기능이 아니라 경관으로 드러나는 개념적 쓰임을 말한다. 공간의 규모와 방식, 나무나 풀이 만드는 색채와 농담, 구조물과 시설물의 물성과 배치가 만들어내는 경관에서 오브제는 눈에 보이거나 들리는 것, 만져지는 것이나 풍겨오는 것 너머의 풍경을 그린다.
'거인은 거미처럼 자기 몸속 방적기를 돌려 실을 잣는다. 방적인의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느린 소리는 경계에서 사람과 도시에 수줍게 말을 건네는 것이다. 문장을 갖추지 못한 말이 건네는 안부는 이미지를 부르고 이미지는 한순간에 각자의 먼 기억과 만나 내밀內密해진다. 여기에 실 잣는 사람이 풀어낸 긴 실은 포장이 되고 의자가 되고 키오스크가 되고 물길이 되어 물질적 가치와 기능이 전부였던 도시에 새로운 정서적 동인動因으로 작동한다. 이것이 불러일으킨 경관적 상상력으로 잊혔던 먼 신화의 기억과 만난다. 이렇게 도시의 기능적 쓰임과 무관한 조각은 개개인의 감수성과 만나 몽상을 이루며 교감하고 경계의 조각이 내민 ‘의미 없는’ 몸짓이 각자의 의식과 만나 하나의 장소가 된다. 다시 말해 단순히 차와 사람이 흘러가는 길이 아니라 기억과 의미가 있는 공간으로 바뀐다.2) 이곳은 도시와 사람을 이어주는 불확실한 사건을 품은 비 확정적 공간이 된다.' 3)
그리고 경관과 관계 맺는 오브제가 가진 개념적 쓰임은 나무와 시설물로 확장된다.
'오브제로서 나무는 기능이 아니라 개념에 따른다. 기능에 따른 식재에서 나무는 몇 가지 범주로 분류될 뿐 개별성을 따지지 않는다..... 그러나 개념에 따른다는 것은 나무의 개별성을 맥락 속에 놓는 일이다. 개념이 디자인을 추동하고 공간이 지리|지형을 바탕으로 할 때 맥락은 개념적 맥락과 공간적 맥락을 동시에 지칭하고 이 맥락 속에서 개별성은 전체와 상호작용을 통해 개념을 공간으로 구체화하고 경관으로 구상화한다. 여기서 나무는 자신만을 주장하지도 전체에 종속되지도 않는다. 그것은 부분이면서 전체이고 전체이면서 부분이 된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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