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여섯 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줄임표로 시작한다. 지나온 발자국이거나 뒤에 남겨진 풍경일 거라 상상케 한다. 새의 길을 따라 한 사내가 길을 밟고 또 다른 사내는 길 밖에서 풍경을 읊는다. 두 사내는 동일 인물일 수도 있지만 확인할 수 없다. 시를 따라가며 이 풍경은 왼쪽에서 시작해 오른쪽으로 옮겨 가는가 아니면 오른쪽에서 시작해 왼쪽으로 이어지는가. 어느 쪽이든 상관 없다. 풍경이 연이어 펼쳐진다는게 중요하다. 길을 밟고 물소리를 밟고 다리와 돌을 딛고 개울과 넝쿨을 따라 하나의 문장이 하나의 풍경을 노래하며 이어진다. 길을 따라 연속되는 풍경에 생각이 미친 까닭에 어찌할 수 없이 이인문의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를 떠올린다. 그래서 그리했다. 시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나아가는 내리쓰기右縱書로 쓰여져야 하지 않을까. 한 줄씩 문장을 따라 읽으며 머릿속에 그리는 풍경이 또한 이어 펼쳐지도록.
모든 이야기는 시간에 따라 흐른다. 오규원식으로 생각하면 이야기가 시간을 만든다. 그러니까 각각의 이야기는 자신의 고유한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이야기가 가진 고유한 시간은 읽은 이의 개별 시간과 만나 또 다른 시간의 흐름이 일어난다. 시에서 시간은 박새에서 한 사내로, 사내의 얼굴에 달라붙는 붉은 그림자에서 지나가는 여자에게, 고인 물속의 새 그림자로, 개울 물소리를 밟는 나비에서 새소리로 다시 한 여자와 아이에게 그리고 작은키나무와 이름 부를 수 있는 나무와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 자세를 바꾸는 돌들과 덩굴을 따라 흐르다가 한 소년의 어깨에 남은 빛으로 고인다. 연속된 풍경 속에서 앞의 풍경과 뒤의 풍경은 시간의 주체가 바뀌고 다른 시간 속에서 놓인다. 아침인지 정오인지 시작은 알 수 없지만 마지막 풍경은 그림자를 거두고 해가 졌다. 이렇게 시 속에서 풍경은 이어지면서 동시에 흐른다.
시가 그리는 풍경은 흔하디흔한 시골의 어느 모습이다. 쥐똥나무 울타리의 집이 있고 길이 있다. 담장이 있고 그 안에 장미가 폈다. 벼랑에 붙은 하늘 아래 길이 뻗는다. 잡초 우거진 길섶과 산에 흔한 나무들, 개울이 흐르고 녹강으로 만든 다리가 놓여 있다. 그 길로 여자와 아이가 걸어가고 산밑에 관목과 덩굴이, 여러해살이풀이 자란다. 카페 건너편 멀리 몇 채의 집이 있다. 그의 시가 대부분 일상의 하찮은 ‘버스 속의 구린내, 개봉동의 골목, 간판이 많은 거리, 비워둔 식탁이거나 식탁 위의 토마토, 아파트 단지의 화단, 돌멩이와 나비, 아카시아나 물푸레나무’ 따위로부터 시작하는 까닭에 풍경이라고 다르지는 않다.
그러나 이 흔한 풍경은 시인이 풍경을 이루는 사물 하나하나를 불러내면서 달라진다. 드러난 사물은 단순히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사물이 만들고 있는 고유한 풍경과 그 풍경이 얽힌 앞 또는 뒤의 풍경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다른 풍경이 된다. 쥐똥나무 울타리 속 박새의 길과 그 길을 따라가는 사내, 담장 안의 장미와 장미의 그늘이 각인된 얼굴, 여자의 치마로 존재가 드러난 길, 나비의 날갯짓과 개울 물소리의 공명, 녹강의 어둠과 은행나무 허공의 대비 속에 길 밖으로 나가는 여자와 아이를 반기는 들찔레 ······. 시는 우리가 지나쳤던 사물과 놓친 소리와 사라진 빛을 고스란히 풍경으로 불러낸다. 그리고 댕댕이덩굴, 하백초, 산벚나무, 떡갈나무, 산오리나무, 칡덩굴, 아카시아, 익모초, 조팝나무, 찔레, 은행나무, 밤나무, 엉겅퀴, 명아주, 망초, 수영, 여뀌, 뱀딸기, 메꽃, 매듭풀, 갈퀴덩굴, 새콩덩굴, 방가지똥, 괭이밥을 하나하나 호명呼名하며 풍경의 주체를 밝힌다. 호명된 풀의 대부분은 우리가 잡초라 부르며 함부로 이름을 지워버린 것들이다. 그래서 이 풍경은 그 무엇과 같지 않고 어디에도 없는 이곳만의 풍경이다.
시는 뒤이은 열한 편의 시와 함께 묶여 있다. '길이 하나 있었다 | 하늘을 나는 새가 참고로 하지 않는 | 사마귀가 함부로 가로지르는 길이 하나 있었다', '쥐똥나무 울타리 밑 | 키작은 양지꽃 한 포기 옆에 돌멩이 하나,', '장미는 담장 안에서도 | 가시가 돋아 있다', '벼랑 위의 길에서 | 축 늘어진 하늘을 밟는다', '길 밖에서 | 메꽃이 하나 이울고 | 여자가 허공을 거기에 두고 | 길에 파묻힌다', '줄줄이 빈자리가 달려도 들찔레의 | 가지는 가볍고', '방가지똥을 지나면 | 괭이밥을 밟아야 하는', '작은 돌들이 있습니다 | 하나와 둘 | 그리고 | 셋 | 넷', '그 하늘에는 | 벤치가 놓여 있지 않다', '그 허공에 지금 막 한 마리 새가 생겨나서 뾰족한 부리를 앞세워 숲 속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림자는 나비의 몸에 붙지 않고 | 땅에 있는 | 두두頭頭와 물물物物에 붙는다' 이 열한 편의 시는 이어 흐르던 시의 한 장면을 붙잡아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풍경을 펼쳐낸다. 이렇게 풍경은 깊어진다.
시의 말미에 시인은 묻는다. '- 당신은 이 시가 |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에서 끝나야 | 한다고 | 생각하는가? ' 여섯 개의 줄임표로 시작해 물음표로 끝내며 풍경의 끝을 읽는 이에게 넘겼으니 읽는 이가 답하기 전까지 풍경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고개들어 바라보는 세상은 창문으로 바라볼 때나 카메라의 뷰파인더 안에 가두거나 액자 속으로 들어갈 때처럼 풍경을 자르는 틀만 있을 뿐 저 건너의 풍경은 시작과 끝이 없듯이.
_2025. 06.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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