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회관은 대수선 공사로 가림막을 설치해 놓았다. 두 그루의 느티나무와 여섯 개의 식재 상자에 팥배나무가 있다. 식재 상자는 1,800x1,800, 높이 1,250이지만, 실제 뿌리가 묻힌 곳은 1,300x1,300에 깊이는 최대로 잡아도 1,500 정도다. 이 정도 체적으로 큰키나무가 자랄 수 없다는 것을 증거한다.
보통 야외무대라고 말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낮은 무대가 있고 세 단의 객석이 있는 야외극장l'amphithéâtre이다. 객석은 화강석으로 단을 두고 잔디로 마감하였을 텐데 이제는 여러해살이풀이 자란다. 공간을 감싸는 위요감은 좋으나 실제 쓰임은 없는 풍물패의 연습 공간 정도로만 쓰인다. 문제는 두 가지다. 여기에 이런 극장의 쓰임이 있는지와 쓰임을 위해 이러한 마감과 구조가 적절했는가. 이 공간은 만들어진 삼십 년이 조금 안 된다. 학교의 역사를 생각해 보면 그리 오래된 곳은 아니다. 둘러보면 나무와 풀은 물론 공간을 만든 재료가 시간을 이기지 못해 퇴색하고 무너져 내렸다. 외부 공간에 돌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물성物性이 주는 무게와 시간을 견뎌내는 내구성耐久性이다. 그리고 내구성은 단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시간을 이겨내는 어떤 것을 뜻한다기보다 시간과 함께 변하면서 시간이 사물에 베어들어 지나간 시간 자체가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는다면 기초를 두텁게 하고 얇은 판재가 아니라 굳이 두꺼운 돌을 쓰려하고 건식이 아니라 습식을 고집하며 건식으로 붙여도 실리콘 코킹을 못 하게 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문양과 장식, 재료와 재료가 만나는 방식, 재료의 마감 따위까지 돌아본다.
이천이십오년 칠월 열하루 | 거두다
철거 공사가 시작됐다. 계단과 램프를 걷어내고 학생회관 1층 바닥과 높이를 맞춰 외부 전면부와 후면부가 같은 높이로 이어진다. 느티나무와 식재 상자를 모두 들어냈다. 생육이 나쁜 나무야 제거가 원칙이지만 잘 자라는 나무를 없애는 것은 늘 마음에 걸린다. 느티나무 두 주는 생육이 괜찮았지만 4·18 기념관 지하 방수 공사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 건물 주변에 붙어 있던 식재 상자도 함께 털어낸다. 건물에 붙은 식재 상자 안에 실외기를 놓기 위해 단을 쌓아 둔 것이 드러난다. 단을 가리기 위해 화단을 만들었던가. 관습처럼 만드는 건물 주변 녹지는 치열하지 못한 건축 설계의 단면이다.
이천이십오년 칠월 스무닷새 | 비다
야외극장과 1,250 높이의 화단이 사라졌다. 건물과 경계 녹지의 나무가 만드는 전체 공간이 오롯이 드러난다. 크지 않으며 또한 작지 않은 공간이다. 건물의 규모와 비교해 보아도 적절한 크기의 공간이다. 없던 공간을 새로 만드는 것과 달리 무언가로 가득 찼던 곳을 비우고 털어내면 공간의 규모는 물론 주변 관계와 그로부터 비롯된 그곳의 성격까지 달리 보인다. 뭐랄까 관계의 민낯이라 해야 하나. 설계의 생각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도상圖上에서 했던 공간이 가진 순수한 뼈대로부터 길어 올린 생각을 철거하는 현장을 보면서 다시 되짚는다. 건물로부터 시작된 선을 경계까지 늘려 벽을 세워 면을 만들고 공간을 구성한다. 단순하고 명료하게 말한다. 방수 공사가 시작됐다. 무근 콘크리트까지 치면 우리 쪽 공사가 들어가기로 한다.
이천이십오년 팔월 열나흘 | 흘깃 보다
설계 회의하러 가는 길에 현장을 잠깐 둘러본다. 학생회관 측면으로 램프와 계단이 없어진 자리에 4·18 기념관에서 시작되는 긴 계단을 놓고 계단 참에 큰키나무를 심을 계획이다. 빠르게 진행 중인 학생회관 전면부 광장 공사를 미심쩍은 마음으로 쳐다본다. 앞선 회의에서 학생회관 뒤뜰로 이어지는 문을 새로 내면서 내부 공간 조정이 이뤄졌고, 전면부 광장이 뒤뜰까지 이어지도록 녹지를 없애고 스탠드를 연장한 계획을 시공하는 그쪽에 넘겼었다. 빗물이 빠지지 않고 있다.
이천이십오년 팔월 스무이레 | 시작되다
철근 절곡기.
현관 앞에 임시 베이스캠프가 차려지고 공사가 시작됐다. 첫 번째 거푸집을 만든다. 4·18 기념관과 붙어 있는 쪽으로 높이 1,250의 화단벽과 너른사각데크를 감싸는 벽을 세우기 위한 기초 거푸집이다. 화단벽은 너른긴의자까지 와야 하고, 데크감싼벽의 기초가 데크 기초와 한 덩어리로 이어지기 때문에 기울어져 뻗어나가는 기초의 위치를 확인하고 일부 철거해서 다시 짜기로 한다. 데크감싼벽은 기역 자로 꺾여 나오는 날개 부위를 갖는다.
이천이십오년 팔월 스무여드레 | 이어지다
방수 끝난 버림콘크리트 위에 스프레이페인트lacquer로 너른긴의자가 들어갈 위치를 표시한다. 4·18 기념관 건물과 붙은 화단을 털어내고 등받이가 있는 너른긴의자를 놓기 위한 거푸집 자리다. 여기 의자를 놓은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다시 화단을 만들 때 우선 방수가 계속 문제 될 수 있고 건물 외벽 화강석 마감이 바닥까지 내려오지 않고 화단 있던 자리에 끝나 새로 외벽 마감을 하면 예전 돌과 색이 달라 보기가 그닥 좋지 않을 것이라 우려였다. 그리고 여기 의자를 만들면 뒤뜰 공간을 더 넓게 쓸 수 있다. 처음 의견을 낸 것은 조경 담당 선생인데 회의하면서 관리 처장 교수도 같은 의견을 내었다. 너른긴의자가 화단벽과 만나고 화단벽은 데크감싼벽과 이어진다. 이 벽은 다시 쪽문 쪽 계단 날개와 이어질 것이다.
이전 야외극장 객석 기초와 지하 구체가 맞물려 있어 완전히 철거할 경우 누수가 발생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일부를 남겨둔 까닭에 화단벽이 계획보다 앞으로 나오게 되었다. 현장에서 한참 화단벽 위치를 고민하다 기존 구체와 최대한 붙인 자리에 세우기로 하고 기초 다릿발은 뻗을 수 있을 만큼만 안쪽으로 내밀기로 한다. 화단벽이 쳐지면 내부 사연은 아무도 모르게 될 것이다.
이번 너른사각데크는 기초 전체를 판으로 만들어 장선만 위에 얹어 널을 깔 계획이다. 데크가 데크감싼벽과 사선으로 만나 나중에 비스듬한 등받이가 될 것이다. 철근 배근의 사선은 그런 연유다. 데크감싼벽이 꺽여 뻗는 날개 자리에 데크와 데크감싼벽 사이 녹지가 만들어지는데 기초 다릿발이 500이면 토심이 나오지 않는다. 설계하면서 놓친 부분이다. 현장 반장에게 두께를 250 정도까지 낮춰달라 주문한다. 작업을 다시 해야 한다. 미안한 일이다. 그래도 콘크리트 타설 전에 확인해서 다행이다.
이천이십오년 팔월 스무아흐레 | 붓다
데크감싼벽의 기초를 만들기 위한 콘크리트 타설이고 현장의 첫 타설이다. 작업 물량이 적어 펌프차를 부르지 않고 굴삭기 바가지에 퍼서 나른다. 후일담이지만 시공 박대표는 펌프를 쓰지 않으니까 외려 기포가 덜 생기겨 좋은 것 같다 한다.
이천이십오년 구월 초이틀 | 사개를 맞추다
사물이 만들어지는 데는 네 가지 방식이 있다. 나무나 돌은 자르고 깎고 붙여 만든다. 청동과 쇠, 콘크리트와 플라스틱은 녹이고 붓고 굳혀 만든다. 쇠는 둘 다 가능하다. 유기체인 식물과 동물은 씨앗에서 출발해 안에서 밖으로 스스로 자라 만들어진다. 이 일반적 방식을 벗어난 네 번째 방식은 융합과 분열이라는 파괴破壞를 통해 만들어진다. 우주와 에너지다. 거푸집 얘기다. 설계할 때는 만들어지는 외양만 생각하지, 어떤 방식으로 거푸집이 짜일지 거의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일이란, 특히 지금처럼 콘크리트로 만들고 그것으로 마감될 때는 거푸집 짜는 것이 일의 대부분인 듯 보인다. 물론 붓고 굳힌다고 끝나지 않고 깎고 갈고 붙여 마무리되지만, 근간은 붓는 것이고 붓기 위해 틀을 만든다. 그러고 보니 사물도 생각도 틀이 중요하다.
모두 열두 개의 긴의자 중 우선 네 개의 긴의자 거푸집 작업을 먼저 한다. 폭 800에 길이 4,800 짜리다. 이번 긴의자는 중앙광장의 긴의자와 달리 양쪽으로 앉을 수 있도록 위 상판 전체에 널을 깔고 측면으로 타고 내려오지는 않는다. 이럴 경우 콘크리트와 널 사이가 장선의 크기인 50 만큼 벌어진다. 사이가 너무 떠서 장선을 콘크리트 속으로 30 정도 묻기로 하고 장선이 들어갈 자리에 배근과 연결한 각재 대 거푸집 위로 띄웠다.
이천이십오년 구월 초닷새 | 짜다
콘크리트가 드러나는 상부와 측면에 나중에 있을 기부자 명패를 넣게 위해 합판을 기억자로 덧댄다. 4·18 기념관 측면 화단벽 거푸집에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데크감싼벽의 거푸집 작업이 진행 중이다. 자르고 짜고 붓고 굳히기가 반복된다.
이천이십오년 구월 열흘 | 떼다
긴의자 거푸집을 떼에 냈다. 장선과 명패가 들어갈 틈과 함께 전체 형상이 드러난다. 측면은 10° 기울여 앉기 편하게 만든다는 게 모양까지 이쁘게 되었다. 이눔의 디자인 센스라니. 너른긴의자 콘크리트기초도 모습을 드러냈다. 잘 나왔는데 여기 놓친 것이 있다. 나중에 사진을 보니 장선이 들어갈 자리의 각재가 빠져 있다. 장선 작업하면서 콘크리트를 따내기로 한다. 그리고 데크감싼벽 거푸집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이천이십오년 구월 열하루 | 숨죽이다
데크감싼벽 콘크리트 타설 전날, 작업을 모두 마친 현장은 고요하다. '숨죽이다'의 세 번째 뜻은 '긴장하여 집중하다' 이다. 현장이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