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숲 설계 3제 _두 번째 | 인천 보건고등학교
강의록을 다시 쓰다
낭독하는 태도
그래도 그는 고래를 꿈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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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숲 설계 3제 _두 번째 | 인천 보건고등학교
^ 학교라는 공간
학교라는 공간의 힘은 빈 운동장에서 나온다. 칸칸이 교실, 교실 속 아이들이 있는 교사校舍와 상반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의 운동장이야말로 학교가 어느 곳과 다른 공간적 힘을 갖게 한다. 그것은 운동장에서 뛰고 달리며 소리치는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힘이며, 함께 모여 어우러져 가능한 힘이며, 무엇이든지 할 가능성이 만들어내는 힘으로 그 모든 것은 비어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거기다 운동장을 덮은 흙이라는 땅의 표면이 가진 물질의 원초성은 이 힘을 배가시킨다. 그래서 학교 공간의 문제는 먼저 뚜렷한 기능을 갖는 교사와 잠재된 행위의 가능성을 내포한 운동장을 어떠한 관계와 형식으로 놓을 것인가이고 이것으로부터 생겨난 교사와 운동장이 마주한 '사이' 공간의 문제로 이어진다. 학교숲은 사이 공간에 관한 여러 해법 중에 하나다.
감독관청인 교육청이나 발주처인 학교로서 숲이라는 푸른 녹지 공간이 중요하겠지만, 조경 설계의 관점에서 보면 학교숲을 만들면서 무슨 나무를 심고 어떤 풀을 심어 작은 숲이면서 멋진 정원을 만드는 일에 앞서 살펴야 할 것이 교사와 운동장 사이에서 어떤 관계와 맥락 속에 학교숲이라는 공간을 놓을 것인가이다. 인천 보건고등학교의 학교숲은 이 문제에 관한 얘기다. 교장 선생이 임의로 바꾼 데크 널의 방향이나 그렇게나 주의를 주었음에도 육각머리나사를 접시머리나사로 바꾸고 바르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오일스텐을 칠해버린 것에 격노激怒했지만 그것은 사소한 일이다. 우리가 이뤄낸 운동장에서 교사로 이어지는 공간적 차례séquence의 통합에 비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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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문 쪽에서 바라본 학교 전경 _2023. 09. 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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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입로와 스탠드의 참으로 벚나무가 이어지며 사이로 운동장이 들어온다 _2024. 09. 06.
^ 인천 보건고등학교
인천 보건고등학교는 보건 의료 관련 특성화고등학교다. 예전 전문대학교를 고등학교로 바꾼 까닭인지 여느 학교와 달리 규모가 크고 주변의 수목이 잘 가꾸어져 있다. 드라마 촬영 장소로 쓰이기도 했던 운동장은 그 규모와 거칠게 다듬은 화강석 스탠드가 주는 공간과 물성의 힘이 좋다. 이 힘은 규모에서 나오지만, 운동장을 둘러싼 벚나무 가로수와 사면의 숲은 학교가 가진 더할 나위 없는 경관적 자산이다. 학교는 운동장, 스탠드 참의 벚나무 길, 교사 아래 단, 그리고 교사가 있는 곳까지 네 개의 층위를 이룬다. 그러나 교사와 운동장 사이 녹지에 잘 가꾼 이중의 가이스카향나무는 수벽을 이루면서 철저하게 공간을 단절시킨다.
워커숍 과정에서 세 군데의 후보지를 논의했고, 그중에 교사 아래 단의 녹지가 끝나는 곳에 있는 비가림시설과 그 주변으로 대상지를 정했다. 그런데 학교의 생각은 학교에 이미 나무가 충분하니 여기에 다시 숲을 만드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대신 학생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학교숲 사업은 공사비의 50% 이상을 수목식재 비용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해서 학교 측에서 교육청과 협의해야 한다고 밝혀 두고 그리 진행하기로 한다. 지붕 크기로 10,500 X 7,500mm의 비가림시설은 에이치빔으로 튼튼하고, 그 아래 여덟 개의 긴의자가 마름모꼴로 놓여 있다. 몇 해 전 등나무가 장했었는데 말벌이 집을 짓는 바람에 등나무를 제거하고 덩그러니 하얗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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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 평면 | 비가림시설 | 스탠드 참 벚나무 길에서 비가림시설 쪽을 바라보다 _2023. 09. 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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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교사 아래 단, 스탠드 참 벚나무 길, 운동장 _2023. 09. 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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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계와 시공
우선 비가림시설에 붙어 수벽을 이루는 가이스카향나무를 모두 제거하고 아니 그 사면의 나무를 모두 제거하고 운동장 쪽으로 시선을 연다. 바닥의 블럭을 걷어내 목재 데크를 깔고 사면으로 연장해 운동장 쪽을 바라보고 앉을 수 있는 다섯 단의 스탠드를 만든다. 양옆으로 폭 1,500mm과 1,100mm 두 개의 계단을 둔다. 비가림시설 아래에 폭 800mm에 길이 6,000mm의 목재 긴의자 네 개를 놓는다. 잔디밭과 비가림시설 사이에 있는 키 800mm의 회양목을 이식하여 잔디밭과 하나의 공간으로 만든다. 벚나무가 있는 스탠드 참의 블럭 포장을 걷어내고 콘크리트 포장을 하면서 스탠드까지 길을 연장한다. 두 주의 고사한 벚나무를 제거하고 새로운 나무를 심고, 옹벽 앞쪽으로 벚나무를 추가로 심는다. 마지막으로 비가림시설 주변의 아스팔트 일부를 걷어내 배수로를 설치하고 녹지를 두어 학교숲에 합당한 잎지는큰키나무인 계수나무와 산딸나무 아홉 주를 심는다. 실시설계와 시공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에 따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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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협의 평면과 입단면 스케치 _2024. 01. 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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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럭을 걷어내고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나머지 배수로 거푸집에 콘크리트 타설하다 _2024. 0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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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 기초를 끝내고 가구架構를 짜고 있다. 도면을 제대로 보지 않아 잘못 작업하고 있다 _2024. 0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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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름이 있으면 좋겠다 _2024. 0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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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림시설과 네 개의 너른목재의자 _2024. 0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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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적 차례séquence의 통합이라니 너무 거창한가 _2024. 0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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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나무 가지 사이를 지나온 운동장이 비가림시설로 달려든다 _2024. 0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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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계단은 건드리지 않고 대신 계단이 끝나는 자리에 왕벚나무를 심는다 _2024. 06.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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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나무의 프레임에 들어온 다섯 단의 스탠드와 비가림시설 _2024. 0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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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윗 단은 15° 기울어지게 했다. 널 방향이 이게 아니어야 한다 _2024. 06.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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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비가림시설과 스탠드는 한 반 학생들이 모두 들어갈 수 있는 넉넉한 규모의 야외교실이 되었다. 거기다 잔디밭과 이어진 너른 휴게공간이며 무엇보다 운동장을 품은 바람자리風點가 되었다. 이 공간을 통해 완강하게 나누어진 공간적 층위는 상호 관입하면서 이어져 흐른다. 바람이 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풍경과 풍경은 서로 중첩하여 스밀 것이다. 아홉 주의 나무가 잘 자라 준다면 벚꽃 분분紛紛을 지나 늦봄이나 초여름 하얀 꽃받침을 볼 것이고 가을 달나라 토끼들이 만든 하트 모양의 노오란 단풍과 겨울 붉은 열매를 보게 될 것이다. 비록 아홉 주지만 그 나무들은 아주 크게 자라 비가림시설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더 무엇을 바랄까. 에이치빔 기둥의 칠을 벗겨내고 다시 하얗게 칠한 뒤 빔 사이에 두툼하게 목재를 끼워 넣는다. 더할 나위 없다. 없을 뻔했다. 공사 기간에 가끔 갔어야 한다고 스스로 꾸짖自責는다. 빌런은 마블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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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할 나위 없... _2024. 06.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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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_인천광역시 서구 서달로 58-16
학교 면적 _38,525m2
사업 면적 _1,072m2
기획 | 감독 _인천시 교육청
발주 _인천 보건고등학교
사업매니지먼트 _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
설계 _아뜰리에나무
워크숍 + 설계 기간 _2023. 10. 02. - 2024. 02. 16.
공사 기간 _2024. 04. - 2024. 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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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라운드건축 박창현 소장과 오-스케이프 아키텍튼 박선영 소장이 진행하는 언형세미나가 지난 사월 스무엿새 에이라운드건축 사무실 일층에서 있었다. 초대는 창현 소장으로부터 작년 말에 받았었다. 어눌한 말에 어떻게 할까 싶어 저어하다 책 한 권 더 팔아보겠다는 먼눈에 하마 했었다. 그래도 그렇게 모여 들어주었다는 게 감사하다. 더는 이런 일이 없겠지만, 돌아와 몇 가지 그건 아니지 않았을까 생각하다 다시 강의록을 쓴다. 강의록은 강의와 일치하지 않는다.
강의 끝나고 받은 몇 가지 질문 중에 창현 소장이 '너는 시골에서 자라 거기서 체득한 자연에 관한 얘기를 술자리에서 많이 했는데 설계하는 것을 보면 그런 이야기가 잘 보이지 않는다. 시골에서 체득한 것은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설계에 어떻게 반영되는가?' 라고 질문했는데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우리는 쉽게 시골에서 자라면 자연 속에서 사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엄밀하게 얘기하면 자연과 가깝지만 자연 자체, 원시 자연은 아니다. 그러나 세미나에서 얘기했듯이 헌트가 농경지를 두 번째 자연이라 한 것에 이유가 있다면 아마 그것은 시골의 삶은 사람과 자연이 일체화되어 있기 때문이라 미루어 짐작해 본다. 물론 농사가 자연 | 땅을 굉장히 폭력적으로 경영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자연과 사람이 하나의 경관으로 같은 삶의 주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 계절의 추이와 삶의 추이가 함께 하고, 시간의 변화에 따라 역동적으로 바뀌는 경관 속에서 살아가면서 온몸으로 자연을 느끼는 것. 밤하늘에 쏟아지던 은하수와 봄 모내기 철의 물거울 된 풍경 같은 것은 겪어 체득하지 않으면 상상할 수 없다. 이게 중요한 것은 지금에서야 깨닫는데 우주의 운행과 함께하는 것이었다. 이야기가 수습하기 힘들게 거창히 흘러가고 있지만,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사람의 일반이 가진 정도의 감각 안에서 이십사절기가 단순히 달력의 날짜가 아니라 계절이 변하고 기온이 바뀌면서 해야 할 일과 하는 일과 주변의 풍경이 괴리乖離되지 않은 삶이 주는 온전한 세상에 대한 이해가 설계의 형태가 아니라 꿈꾸는 경관에 있다고 하면 답이 되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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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하는 태도
서울 혜화동 로타리 동양서점 이층 시집서점 위트 앤 시니컬의 사가독서에서 태도 낭독회를 한다. 시인 김소연의 시집 '촉진하는 밤, 2023' 중에 있는 시 '해단식'을 빌린 낭독회로 관객 없이 유튜브 채널 '위트 앤 시니컬 TV'로 실시간 중계한다.
낭독하는 태도
일시 : 2024년 8월 3일 토요일 오후 3시
장소 : 위트 앤 시니컬 ‘사가독서’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271-1, 2F)
출연 : 이수학(낭독자, 조경가), 유희경(일꾼, 시인)
* 「낭독하는 태도」는 시인 김소연 님의 시 「해단식」에서 모티프를 얻어 기획되었습니다.
* 「낭독하는 태도」는 90분 동안 진행되며 현장 관객은 받지 않습니다.
시집서점 위트 앤 시니컬 인스타그램 >
시집서점 위트 앤 시니컬 TV _유튜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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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는 고래를 꿈꿨다... _02
_ 2016. 08. 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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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뜰리에나무
ateliernamoo.xyz@gmail.com
+82 2 766 4128-9
02880 서울시 성북구 창경궁로43길 16, 4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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