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개의 질문에 답하다'를 위한 그림 주석
낭독하는 태도 후기
그래도 그는 고래를 꿈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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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개의 질문에 답하다'를 위한 그림 주석
네 개의 질문을 받는다.1) 작업을 모아 책으로 묶는 이유와 만든 과정 그리고 이 과정의 즐거움이나 어려움은 무엇인가. 아뜰리에나무의 웹사이트는 여느 설계사무소 웹사이트와 구조가 다르다. 웹사이트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작품집과 웹사이트에 수록한 작업 중에 ‘청계천 프로젝트’2)가 기억에 남는데, 실현되지 않은 | 않을 그림만 남은 작업paperwork을 담는 의도는 뭔가. 주제와 관련해 유엘씨에서 눈여겨본 부분이나 앞으로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 네 개의 질문은 모두 하나의 주제로 수렴된다. 이야기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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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엘씨ULC, Urban Landscape Catalog는 도시 공간, 지역 사회, 조경 관련 산업의 종사자와 연계 학문의 연구자 그리고 도시민을 대상으로 도시 경관의 기능, 특징, 디자인 등 다양한 면모들을 관찰하고 재구성한 매거진이다. 유엘씨에서 보낸 유엘씨 디호에 실을 원고 청탁 편지 _2023.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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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순서가 아니라 일이 벌어졌던 순서로 서술하면 그러하다. 조경에 관한 무분별한 열망만 가득하고 무엇 하나 할 수 없던 시절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누리집을 만들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한국정원 톺아보기’3)가 그랬고 나중에 ‘아뜰리에나무’로 바뀌었지만 ‘조경공방 나무’4)가 그랬다. 누리집의 구조는 의도한 것이 아니다. 하나의 단위는 각각의 얼개 속에 있고, 단위와 단위는 그저 느슨하게 이어져 있을 뿐이다. 그것은 이십 년 동안 조금씩 덧씌워진 결과가 만든 혼돈이다. 이를 줄이려 맞이쪽index.htm5)의 모습을 게으름의 끝에 섯을 때마다 바꿔보지만, 혼돈만 더하여진다. 그리고 누리집을 통해 모두 네 번의 열린 프로젝트open project를 진행했다. 나중에 하나둘 설계 일을 하면서 설계 프로젝트가 전면을 차지했지만, 아뜰리에나무 누리집의 시작과 근간은 열린 프로젝트를 통해 설계를, 조경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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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아뜰리에나무 누리집 맞이쪽index.html 디자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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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프로젝트6)는 거창한 시작과 제한된 뜨거운 열기가 게시판을 달궜지만, 지지부진한 작업과 열린 결과로 성과는 논의된 적 없고 드러난 문제는 여전히 답습되고 있다. 이 행위는 미약하여 무엇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으며 미미하여 어떠한 압력도 없이 자유자재였다. 예정된 실패를 향해 묵묵히 나아갔던 열린 프로젝트는 비록 미완으로 끝났지만 설계가 하나의 언술이 되고 이것이 단일 지향점이 아니라 무수한 개별적 지점을 향하면서도 그것 또한 조경이란 이름으로 세상과 또 다른 접점을 보여주었다. 좀 심하게 비약하자면 들뢰즈와 가타리가 얘기한 ‘국가로 환원되지 않는 이 기계가 최고도의 환원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승승장구하는 국가에 도전할 수 있는 활력 또는 혁명력을 갖춘 창조 기계 속으로 흩어져 들어가는 것이 과연 가능’ 7)한 설계 기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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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질 들뢰즈Gilles Deleuze · 팰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 천 개의 고원, 김재인 옮김, 새물결, 2001, 682쪽. 이수학, 태도Ⅰ, 아뜰리에나무, 2023, 39쪽에 같은 문구가 인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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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각은 이제까지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조경을 건축이 그러하듯 작품이라는 물리적 현현의 결과물 중심으로 바라보는 것이 옳은가 하는 의심으로 이어진다. 정원이나 공원은 건축물과 달리 끝없이 변한다. 삼 미터가 넘게 자라는 화살나무를 1.2 미터의 수벽으로 둘러쳐서 만든 울타리가 언제까지 유지되어야 그것은 작품으로 남겨지는가. 도라지가 개망초로 자리를 바꾸고 양지꽃이 고사리밭이 되어가는 팥배나무 그늘은 원했던 정원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액자 속에 접어 넣을 수도, 유리 상자 속에 가둘 수도 없는 조경이 만든 그 모든 것들은 얼마 동안 조경가가 꾸었던 풍경으로 지속되어야 작품이라 할 수 있는가. 오해는 말아야 한다. 이 모든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설계한 그것이 물리적으로 고스란히 만들어지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과 별개로 아니 그러한 노력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또한 명백하다.
이러한 생각은 행위 자체를 조경이라 규정하는 극단의 자세를 취하게 한다. 그러니까 조경은 만들어진 결과물이 아니라 마주한 것을 대하는 태도와 그 태도에서 비롯된 행위가 조경이다. 그랬을 때 이 행위는 때로 결과물인 정원이나 공원 또는 가로나 광장으로 남겨질 수도 있고, 한 권의 책이나 그림으로 남을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만들어진 사물에 있지 않고 사물과 인식 사이에서, 만들어진 정원이나 읊조린 말로부터 우리가 느껴 그려진 경관이라는 감각에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그동안 유엘씨가 만든 책8)이 수식어 없는 조경 자체다. 바라보는 시선이 있고, 그 시선으로 사물과 인식의 접점을 드러내 새로운 풍경을 우리안에 그려낸다면 그것이 조경이 아니고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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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태도’는 이천십칠 년으로 작업을 시작해 칠 년이 걸렸다. 재능은 좀 떨어지지만, 과묵한 편집자9)가 이 어처구니없는 여정을 함께 해서 가능했다. 그의 도저到底한 어리석음은 가로가 긴 초벌그림을 세로로 긴 판형에 구겨 넣어 반쪽을 접는 그러니까 펼치면 세 쪽이 보이도록 편집한 것이었는데 인쇄사에서 인쇄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 판형 자체를 바꿔 전체를 다시 편집해야 했고, 천 쪽이 넘는 책을 한번에 제본하겠다고 했는데 역시 제본소에서 가로가 긴 판형은 두께가 오 센티미터를 넘을 경우 제본에 문제가 생긴다는 얘기를 듣고 부랴부랴 두 권으로 다시 나눠 편집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그는 편집 디자인 전문가가 아니었다. 그의 매끄러운 아마추어리즘이 빚은 만행蠻行을 이 자리를 빌려 규탄糾彈하며 판권지에 그 이름 당장 지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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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이됴, 글꼴디자이너이자 편집디자이너다. 얀 치홀트Jan Tschichold를 사숙私淑했다. 작업으로 건축가 이일훈선생의 사후 기념 공간인 지벽간 간판, 이일훈건축지도, 태도_조경 | 행위 | 반성 | 시작, 이일훈 1.0_제주, 떠나던 날의 풍경 _개망초가 흐드러지게 핀 여름날이었습니다, 태도I·II가 있다.
지벽간 간판 디자인을 위한 낙서, 사진은 지벽간에 있는 간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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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벌그림은 그려진 순서로 배열되고 설계 | 설계안을 얘기하는 말 설계는 초벌그림의 순차를 역류해 나선의 궤적으로 거스른다. 대상지를, 대상지 위에 덧씌운 선을, 선들이 모여 만든 면과 들고 일어선 공간을, 그 공간을 그리던 그를 마주하며 흩어진 낱낱의 이미지와 텅 빈 공간이 숨긴 풍경을 하나씩 들춰 펼쳐 보인다. 말 설계는 설명說明이 아니다. 말 설계는 진술陳述이 아니다. 말 설계는 서술敍述이다. 구체적인 상세한 묘사描寫로부터 시작해 그것이 그려낸 공간과 경관 속으로 들어가 다시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풍경을 풀어 놓는 일이다. 말 설계는 그려진 또는 계획된, 아니면 만들어진 풍경조차 지우고 바라보게 될 때 느껴 그려지는 어떤 경관이다. 이렇게 보면 오언절구五言絕句나 칠언절구七言絕句의 팔경八景 또는 십경十景으로 된 시詩는 가장 완벽한 말 설계의 모습이지 않겠는가. 책 태도는 그것과 정반대의 길을 갔다. 장황한 묘사 속에 풍경은 뭉개졌으며 중언부언으로 길을 잃었다. 텀블벅 펀딩 소개글에서 ‘허먼 멜빌의 ‘백경’10)과 도스또옙스끼의 ‘백치’11)에서 영감을 받아 썼으며 보르헤스12)식 농담이 담겨 있다.’ 했지만 이것은 실패의 자기부정이며 한계의 자가당착이다. 그래도 시도는 했다는 노력 대가성 위로가 무슨 소용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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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모비딕 상·하, 옮긴이 강수정, 열린책들, 2014. 맷 키시Matt Kish 구성, 그래픽 모비딕, 강수정 옮김, 미메시스, 2013.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모비딕, 모리스 포미에Maurice Pommier 그림, 김석희 옮김, 작가정신, 초판 8쇄, 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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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도스또옙스끼, 백치白痴, 박형규 역, 동서문화사, 19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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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호르헤 루이즈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보르헤스 전집, 황병하 옮김, 민음사, 1판 26쇄, 2012.
전집의 표지 디자인, 사진이미지는 다음 사이트에서 가져왔다. _2018 0825 _https://fr.wikiquote.org/wiki/Jorge_Luis_Borges#/media/File:Borges_facio_1968.jpg Jorge Luis Borges photographed by Sara Facio at the National Library of Argentina, in 1968. Borges was the director of that public institution by then. _https://www.ndbooks.com/author/jorge-luis-borg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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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야기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왜 그 또는 그녀는 이야기하려 하는가. 이런 생각, 땅 위에 발을 딛고 서 있는 나, 나와 같은 사람, 수많은 사람, 그들이 서 있는 지구, 지구가 목매달은 태양, 태양이 거둬들인 떠돌이 별이 모인 태양계, 그 태양계가 속한 우리은하, 은하들이모여 있는 초은하단, 초은하단 속 미립자 같은 떠돌이 행성 하나, 그 별의 극소미립자인 나, 그 나가 바라보는 물방울, 물방울 속에 들어앉은 우주, 그 우주를 바라보는 나, 우주의 극소미립자 혹은 아직 형성되지 않은 별, 이제 막 인력을 끌어모아 중력을 만들고 있는 별. 내용과 형식, 차이와 동질, 무게와 밀도, 미완과 완전, 산개散開와 수렴收斂, 생성과 소멸로 이어지는 과정의 미립자인 나. 그 나는 그렇게 또는 이렇게 이야기를 통해 형성되고 있는 하나의 오롯한 별. 이제 막 이름을 갖기 시작한 B61213), 그 별이 만드는 하나의 우주. 그렇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까닭은 우주 속에서 생성과 소멸의 궤적을 그리는 하나의 별이기 때문이며 이 별은 여전히 이야기를 통해 만들어지는 중이다. 아니면 그 처럼 소멸을 향해 가고 있거나. 유엘씨라는 별의 우주는 생성 중이다. 그 우주가 만든 세상이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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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앙투완 마리 로제 드 생텍쥐페리Antoine Marie Jean-Baptiste Roger de Saint-Exupéry, 어린 왕자Le Petit Prince, 김화영 옮김, 문학동네, 2009.
쌩 떽쥐뻬리Antoine Marie Jean-Baptiste Roger de Saint-Exupéry, 인간의 대지 · 어린 왕자 외, 안응열 역, 동서문화사, 19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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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하는 태도 후기
'낭독하는 태도'는 팔월 초사흘 서울 혜화동로타리 동양서점 이층 위트앤시니컬의 사가독서에서 있었다. 김소연의 시 '해단식'을 대본으로 시가 얘기하듯이 아무도 초대하지 않은 채 스탠드 마이크 앞에서 한 시간 사십오 분 동안 이뤄진 반전 없는 모노드라마였다. 서점지기 희경 시인의 배려와 수고, 경화 매니저의 따스한 눈길이 아니었다면 이뤄지지 않을 일이었다. 그의 쇠된 목소리와 구부정한 모습은 위트앤시니컬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 볼 수 있다.
'낭독하는 태도' _위트 앤 시니컬 유튜브 채널에 있는 동영상 >
시집서점 위트 앤 시니컬 인스타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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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는 고래를 꿈꿨다... _03
_ 2016. 08. 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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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뜰리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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