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接近
부여에 들렸다가 강변도로를 따라 금강을 거슬러 세종시로 간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국가상징구역 마스터플랜 국제공모'를 위해 대상지를 둘러보러 간다. 공모는 '국가상징구역이란 대한민국 국격과 정체성을 상징하고 국가가 지향하는 미래의 가치를 담아낼 수 있는 공간으로서 대통령 세종집무실과 국회 세종의사당이 동시에 건립'*하기 위한 마스터플랜을 계획하는 일이다. 예전 지명으로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이제 행정 구역으로 세종특별자치시 세종동이며 도시계획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 에스S-1생활권에 속한다. 대상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절재로로 들어가기 전 국가지원지방도 96번 도로에서 대상지를 바라보면 서쪽에서부터 오산과 원수산, 형제봉과 전월산이 동쪽으로 이어지면서 금강으로 내닫는다. 그 아래 마을과 내삼천이라는 작은 천이 흐르고 논밭이 금강까지 펼쳐져 있었다. 지금은 논과 밭이 있던 곳에 호수공원과 수목원이 자리하며 그 사이에 가림막이 쳐진 대상지가 놓여 있다.
'한국의 발견, 충청남도 연기군' 편을 보면
'이 군은 예로부터 부지런하고 맘씨 좋은 사람들이 사는 살기 좋은 고장으로 알려져 왔다. ··· 인심이 좋다고 함은 흔히 그곳이 살림살이가 쪼들리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나 이곳은 논도 밭도 넓지 않아 산물이 넉넉한 편이 아니고 보면 이곳 사람의 생활이 넉넉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심성이 두터워서 그랬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많지 않은 사람들이 조그만 터에 모여서 몇개 안 되는 마을을 이루어 부지런히 농사 짓고 산 연기군의 좋은 인심은 오늘에 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라 기술하고 있다. 마을도 사라지고 사람도 떠난 곳의 예전 이야기를 다시 들춰내는 이유는 단속적斷續的 시간의 연결 고리를 붙잡으려는 심사心事만은 아니다. 인문 지리서人文地理書인 '한국의 발견' 속 글은 지금은 여기에 없는 사람과 그들이 땅과 얽혀 만든 원형原型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설계는 결국 그곳에 무엇이 담기든 원형의 전복顚覆이 아니라 그것의 변주變奏에 관한 이야기여야 한다. 이것이 설계에서 땅을 살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관망觀望 | 灌莽
그 마을 이름은 양화리라 했다. 마을 가운데 고려 말 충신 임난수 장군을 기리는 사당이 있고 암수 두 그루 은행나무가 오래도록 큰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은행나무는 예전 공자孔子가 그 아래서 가르침을 주었다 하여 행단杏壇이라 이르고 학문을 닦고 수행하는 곳을 상징하는데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성균관 명륜당 마당의 은행나무가 그러하다. 마을을 이루었을 비워진 집터 자리는 나무와 풀이 우거져 숲으로 변하였으며 겨우 흔적만 남은 길도 맹렬한 초록의 욕망 앞에 속수무책이다. 그리 크지 않지만 마을 앞을 가로질러 가는 천은 산에 내려오는 작은 물줄기를 모아 금강으로 흘러들면서 마을을 지켜내고 숱한 삶을 엮어 냈으리라. 뒷산 두 개의 작은 봉우리는 형제봉이라 부르고 산의 이름은 전월산轉月山이라 했다. 전월轉月, 미호천과 금강이 합류하여 달을 담아 흘러 돌고回 하늘 속 달이 변하고變 넓게 펼쳐진 들판으로 달이 구른다動. '전轉' 자는 이런 뜻을 담고 있다. 때는 가을이고 산에서 바라보는 이곳의 풍광은 그리 아름다웠을 것이다.
2009년에서 2010년 사이에 이주가 시작되었으니, 마을이 비워진 것은 십여 년을 넘긴다. 가옥은 철거되고 마을 앞동산은 깎여 평탄한 자리에 뭇 씨들이 날아와 관망灌莽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몇백 년에 걸쳐 땅과 물길에 순응해 만들어진 마을의 흔적은 여전하고 들풀과 나무는 바람을 거스르지 않는다. 인간의 개입介入만 없다면 물길은 마르지 않고 식물은 열심으로 땅을 일군다. 이제 코스모스는 구절초와 억새가 만드는 꽃 귀한 가을 풍경을 책임지는 흔해서 귀한 야생화라 불러야 한다.
* 행정중심복합도시 국가상징구역 마스터플랜 국제공모 지침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과 한국토지주택공사, 2025.09, 20쪽.
** 한국의 발견, 충청남도, 뿌리깊은 나무, 첫째판 1983, 여덟째판 둘째쇄 1992, 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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