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정중심복합도시 국가상징구역 마스터플랜 국제공모 _02
· 연장 _04 | 컴퍼스와 디바이더
· 고양이와 초벌그림
· 동네에 나무가 있다 _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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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중심복합도시 국가상징구역 마스터플랜 국제공모 _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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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벌그림 _01, 1/4,000, 2025.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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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벌그림 _01 출력물 위 색연필, 1/4,000, 2025.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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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벌그림 _02, 1/2,000, 2025.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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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벌그림 _03, 1/3,000, 2025.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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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벌그림 _04+05, 1/3,000, 2025. 11. 03. _2025. 11.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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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벌그림 _06, 출력물 위 색연필과 낙서, 1/3,000, 2025.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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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벌그림 _07, 출력물 위 색연필과 낙서, 1/3,000, 2025.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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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 평면도, 1/4,000, 2025.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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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는 어떻게 서사敍事가 되는가. 이 질문을 하기 위해서 먼저 '설계와 그 행위는 하나의 서사가 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설계 행위가 의미를 갖는 것은 즉물卽物의 형태로 형상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가능하며 물리적 형상으로부터 이야기가 발화發花한다. 다시 말해 도시와 건축, 조경은 설계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에서 시작해 전사前事로 설계가 이야기될 뿐이다. 몸을 입지 못한 설계의 모든 행위는 추상의 그림자로 들어가 흔적 없이 사라진다. 설계 행위가 서사가 될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무엇보다 설계는 말이나 문자가 아니라 종이에 그린 그림, 책상 위 모형, 모니터 속 이차원과 삼차원의 형상과 형태로 이뤄진다. 개념이라는 추상이 형태 언어를 통해 진행되고 마지막에 사물로 완결된다. 설계의 결과물인 도면을 읽는다 할 때 도시 계획은 인간의 몸을 벗어난 까닭에 그 축척을 가늠하기 힘들고, 건축 설계는 세워 덮인 형상 속으로 들어갈 수 없어 공간을 체득하기 힘들고, 조경은 빛과 바람 없는 풍경 속에 경관의 총체를 느끼기 힘들다. 그렇다면 만들어지지 않은 모든 설계는 무의미한 것인가. 냉정하게 '그렇다'라 잘라 말할 수 있겠지만, 디지털 수장고 속으로 사라져가는 인정 받지 못한 계획안을 바라보는 허탈虛脫은 수습收拾하기 어렵다. 이런저런 이유로 중간에 엎어지거나 현상 설계에서 당선되지 못한 계획안을 내보인 대부분의 설계가는 심사 위원에 대한 분노와 자기 부정의 분열적 공항恐慌 사이에서 좌절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설계가 서가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만들어지지 않은 설계는 모두 무의미한가'라는 자학自虐에 가까운 질문의 반동에서 비롯된다. 설계가 즉물의 화신化身을 향한 부나비가 아니라 그것 자체가 하나의 언술言述로써 스스로의 입을 가진 존재이고자 하는 욕망이며 소멸에 대한 저항이다. 그럼에도 설계가가 자신의 설계를 하나의 서사로 만들지 못하였고 여전히 못하고 있는 이유는 설계 작업이 가진 내재적 구조의 문제라기보다 설계하는 사람이나 조직의 행태적 습성에 기인한다. 그들은 설계가 끝나는 순간 모든 사고와 저항을 멈춘다. 물론 설계한 것이 만들어질 때 그들의 사고는 도면과 물리적 결과 사이에서 지속되지만, 이것으로 서서가 되지는 않는다. 그들이 이렇게 멈춰선 또 다른 이유는 설계 행위가 가진 추상의 층위를 스스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며, 추상의 깊이 속으로 더 들어가 거기서 본 것과 느껴 깨달은 것을 기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가로지른 저항과 기록을 한다고 서사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리라. 서사라니 이 고답적高踏的 인식이 이마골로기1) 시대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문학도 폐기 처분한 서사를 설계에 가져와 무엇을 어찌하겠다는 것이가. 설계가 서사가 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다. 그래서 서사도 버리고 밖을 향한 시선도 거두고 안을 바라본다.
각각의 설계는 고유固有한 질문을 내포한다. 땅과 도시, 공간과 경관을 다루는 설계는 하나의 대상지인 물리적 전제로부터 시작하며 그것이 만들어지기 위한 조건2)이 있다. 전제와 조건은 설계의 시작이면서 동시에 질문의 시작으로 설계마다 다르고 이 다름이 하나의 설계가 가진 그것만의 고유한 질문이 있도록 한다. 그러나 설계를 시작한다고 질문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설계는 질문 없이도 작업이 수행遂行되고 결과물인 계획안을 거쳐 물리적 실체로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설계가 내포한 고유한 질문의 답이 계획안은 아니다. 질문은 설계가가 전제와 조건을 따져 자신의 설계를 의심하는 순간 시작된다. 질문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찾아내야 하는 것으로 구체적 작업이나 물리적 실체 안에 무의식적으로 있지 않고 비평적 시선으로 읽을 때만 마주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질문은 설계 안에 있지만, 질문은 설계와 무관하다. 아니, 정확히 질문은 설계가 이뤄지는 일반적인 과정 밖에서만 가능한데, 그것은 설계와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읽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질문은 설계가 궁극으로 수행해야 하는 것에 관해 묻지만, 이것의 불가능성은 궁극이라는 수식에서 한계를 예견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하나의 설계가 가진 고유한 질문을 마주해야 하는 까닭은 설계가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체제를 가로질러 자신의 길로 가는 혁명 기계3)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와 끈적하게 달라붙은 설계안의 누더기를 벗기는 작업이 질문이다. 개념의 옷을 입은 욕망에 편승하여 축척도 맞지 않는 과장된 몸짓으로 그려진 허위의 설계를 드러내는 작업이 질문이다. 그렇다고 질문 하나가 무슨 세상을 바꿀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질문 하나가 가리키는 좌표를 따라 그는 다음 좌표로 단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허면, 그가 행정중심복합도시 국가상징구역 현상의 조경 설계를 하면서 마주했던 질문은 무엇인가.
1.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불멸, 청년사, 1992, 148_153쪽.
'최근 수십 년 동안 이마골로기imagologie는 이데올로기ideologie에 대해 역사적 승리를 거두어 왔으므로 말이다. 모든 이데올로기가 패배당했다...'
밀란 쿤데라의 전언前言을 공감하든 동의하지 않든 상관없이 지금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설계는 이마골로기의 한 분과分科가 되었다. 특히 현상 설계에서 도면과 설계 설명서가 담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조감도나 투시도라는 이마골로기 앞에서 무력하다. 개념이나 의도, 명분이나 가치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지가 현실이 되어 그 보이는 것이 어떻게 재화와 권력의 가치로 환산되는가만 중요할 따름이다.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는 설계 공모 심사에서 이마골로기의 위대한 승리를 함께 할 수 있다. 전문가라 불리는 편협한 인식의 덩어리, 이미골로그가 심사 위원이란 감투를 쓰는 순간 바보가 되는데 이걸 일컬어 심사권력바보증후군Syndroma Iudicis Incompetentis et Idiotae이라 부른다. 바보가 첫 번째 절대 반지를 끼고 권력을 휘두른다.
2. 이것을 '설계 지침서' 또는 '과업 지시서'라 한다. 지침과 지시라니 차리리 '과업 지도서指導書'라 하라.
3. 질 들뢰즈Gilles Deleuze · 팰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 천 개의 고원, 김재인 옮김, 새물결, 2001, 682쪽.
이수학, 태도Ⅰ, 아뜰리에나무, 2023, 39 쪽에서 재인용.
'전쟁 기계가 국가에게 정복당해 이미 실존하지 않는 바로 그 순간에 국가로 환원되지 않는 이 기계가 최고도의 환원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승승장구하는 국가에 도전할 수 있는 활력 또는 혁명력을 갖춘 사유 기계, 사랑 기계, 죽음 기계, 창조 기계 속으로 흩어져 들어가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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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정중심복합도시 국가상징구역 마스터플랜 국제공모 지침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과 한국토지주택공사, 2025. 09. 4쪽.
'사업명 | 행정중심복합도시 국가상징구역 마스터플랜 구체화 용역
목적 | 본 공모는 대한민국의 국격을 상징하고 미래 비전을 공간적으로 구현할 국가상징구역에 마스터플랜 수립을 위해 창의적이고 우수한 계획안을 선정하는 데 목적이 있다.
대지위치 | 행정중심복합도시 (이하 ‘행복도시’) S-1생활권 내 일단의 대지 (세종특별자치시 세종동)
대지면적 | 210만m² '
함께 공모에 참여했던 사무실
도시 | 어반인사이트건축사사무소
건축 | 금성건축
조경 | 아뜰리에나무
공모에 관한 내용은 다음에서 자세히 살필 수 있다.
환경과조경, 통권 455, 202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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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퍼스compasses와 디바이더divider는 똑같은 모양이지만, 쓰임은 사뭇 다르다. 컴퍼스가 중심을 잡아 원을 그리는 도구라면 디바이더는 길이를 재고 나누는 자의 역할을 하는 도구다. 컴퍼스는 우리말로는 걸음쇠, 양각규兩脚規 또는 양각기兩脚器라 불리는데 두 개의 다리가 톱니로 맞물려서 있거나 철판의 탄성을 이용해 두 개의 다리에 축쇠를 연결해서 돌림쇠를 걸어 놓은 것이 있고 간단하게 나사로 조인 세 종류가 있다. 디바이더는 우리말로 그림쇠라 하고 컴퍼스와 똑같은 구조로 만들어지지만, 두 다리 모두 양 끝에 바늘針이 있어 두 개의 점 사이 거리를 꼭 집어 같은 거리를 반복하여 재거나 길이나 도형을 등분하여 작도하는데 쓴다. 컴퍼스와 함께 쓰는 연장으로 중심기中心器가 있다. 원을 그릴 때 바늘을 꽂은 중심 자리가 커지지 않도록 잡아준다. 둥근 쇠판의 가운데 투명 플라스틱판이 있고 쇠판 아래 가는 바늘이 박혀 있어 움직이지 않도록 해 놓았다.
서양식 제도 도구 이전 동양은 맹자를 보면 '그림쇠와 곱자를 쓰지 않으면 네모나 동그라미를 그릴 수 없으며...' 1) 또 이어지는 글에 '성인이 이미 시력을 다하고 곧 그림쇠, 곱자, 수평기, 먹줄規矩準繩로써 그것을 계속해 네모, 원, 수평, 수직方員平直을 만들어 이루 다 쓸 수 없었으며.' 2)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규구준승은 예전 목수가 사용하던 중요한 네 가지 연장四品을 이른다. 규規는 지금처럼 컴퍼스와 디바이더로 나뉘지 않고 두 가지 기능을 모두 담았던듯 하다. 투르판의 아스파나 무덤에서 나온 복희여와도伏羲女娲圖3)에 컴퍼스와 곡척曲尺, 먹통과 먹줄이 나온다. 맹자는 사물의 물리와 인간의 이치가 다르지 않음을 설명하기 위해 사품을 빌어 설명하고 있는데 우리는 거꾸로 당시부터 컴퍼스가 일반적으로 쓰였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컴파스는 멀리 고구려 환문총벽화나 파르테논신전에서도 쓰임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오래된 도구로 기하학과 건축, 미학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지적 여정과 함께 해왔다. 작도할 때 컴퍼스는 도면이 가진 축척의 의미를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도구다. 하나의 중심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지만, 중심은 사라지고 거대한 원의 일부인 호만을 우리는 식별하거나 빌려 쓴다. 그러니까 도면이라는 한정된 영역 안에서 늘 그 존재의 일부만을 드러냄으로써 우리가 하는 작업의 제한된 범위를 인지시키면서 동시에 그것이 가지고 있는 온전한 모습에 대한 상상 속에 우리를 놓아둔다. 또한 치수 없는 순수한 작도를 통해서 드러나는 황금비례나 루트 비례는 컴퍼스가 만든 궤적을 따라가야만 그 전모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컴퍼스는 세상은 보이지 않는 것과 두 다리가 걸어갔던 궤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일깨운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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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희여와도伏羲女娲圖, 7세기, 투르판,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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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맹자孟子, 맹자孟子, 이루離婁 상上편, 옮긴이 박승원, 위즈덤하우스, 2019, 217 쪽.
'孟子曰:「離婁之明,公輸子之巧,不以規矩,不能成方員'
2. 맹자孟子 이루離婁 상上편, 218 쪽.
'聖人既竭目力焉,繼之以規矩準繩,以為方員平直,不可勝用也'
몇 해 전 이일훈 선생은 술자리에서 제도 오품五品에 관한 이야기 했는데 술이 깨고 그 다섯 연장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무엇을 만드는 것으로 따지면 제도 오품도 목수 사품과 같고 어쩌면 거기서 나오지 않았을까 추측해보면 제도에 쓰는 다섯 가지 연장은 컴퍼스, 디바이더, 삼각자, 척자와 분도기, 오구가 아닐까 되짚는다.
3. 복희여와도伏羲女娲圖, 7세기, 투르판 아스파나 무덤, 삼베에 색, 188.5×93.2cm, 국립중앙박물관, 본관4027.
https://www.museum.go.kr/MUSEUM/contents/M0502000000.do?schM=view&searchId=search&relicId=435
'복희와 여와는 중국 고대의 전설적인 제왕인 삼황오제三皇五帝 가운데 삼황에 속하며 천지창조, 인류의 기원과 문명의 발생을 상징하는 남녀 신입니다. 복희는 천지의 만물을 포함하는 팔괘八卦를 만들고 불을 발명했으며, 그물을 만들어 고기 잡는 법을 인류에게 전해주었다고 합니다. 여와는 인류를 만들어냈습니다. 복희와 여와는 일반적으로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뱀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화면 오른쪽 남신 복희는 구부러진 자矩와 먹물통墨壺이 달린 끈을 손에 쥐고 있으며, 왼쪽의 여신 여와는 가위처럼 생긴 컴퍼스規를 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주를 창조할 때 쓰는 도구들로, 둥근 하늘과 네모난 땅으로 이루어진 중국의 전통적인 우주관과 관련됩니다.'
4. 이수학, 태도Ⅰ, 아뜰리에나무, 2023, 31 쪽. 덧대고 다시 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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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대 제작된 케른 아라우kern aarau, 1980년대 제작된 아스콜라ascola, 스테들러saedtler, 로트링rot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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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와 초벌그림 ]
뭐야 나 그린거야. 냐 - 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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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꼴라예비치 므이시낀과 행정중심복합도시 국가상징구역 국제공모 초벌그림, 2025.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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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따시야 바라시꼬바와 새뚝어린이공원의 알려지지 않은 계획안 초벌그림, 어마무시정글짐 개념 투시도, 2020. 03.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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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에 나무가 있다 _11 ]
영춘화迎春花 Jasminum nudiflorum
37° 35' 32" N
126° 59' 37" E
이른 봄에 피는 봄 맞이 꽃, 영춘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또 이리 늦어버렸다. 산책길에 영춘화 노란 꽃잎이 담장 밑에 수북이 쌓인 걸 보며 이 봄이 지나간 자리가 저리하구나 싶다. 봄에 잎보다 먼저 노란 꽃을 피우며 가지가 늘어져 자라는 것으로 개나리가 으뜸이고 영춘화도 비슷한 모양새나 개나리의 자유분방과 달리 영춘화는 단정하게 아래로 초록의 가늘고 긴 가지를 늘어트려 꽃이 핀다. 학명으로 보면 개나리는 개나리속forsythia이고 영춘화는 영춘화속jasminum이다. 영춘화속이라면 낯설지만, 재스민이라면 익숙하다 못해 친근하다. 영춘화속 식물은 세계에 삼백여 종이 있다 하며 우리가 아는 재스민은 흰 꽃을 피우고 향이 좋아 차로 마시는 그 꽃이다. 재스민은 한자로 말리茉莉라 하며 중국민요 '모리화'가 이름 높다. 장률의 영화 '경주'를 보면 주인공 최현이 중국에 있는 아내가 남겨 놓은 음성 메시지로 '모리화' 노래를 듣는다. 노래를 들으며 그는 터덜터덜 신화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자신도 모르게 경주에 발을 들여 신라의 신화神話 속에 갇혀버릴 남자에게 이승의 그녀가 보내는 마지막 노래가 아름답고 슬프다. 세계 어디든 오래된 도시나 마을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침전되어 체득體得하기 어렵다. 경주에서 오래 살면 그것도 이방인으로 있으면 느껴지는 것이 있다. 경주는 지금의 시간이 흐르고 뒤돌아 과거를 보면 황룡사 구층 탑에 탑돌이를 하는 그녀가 바로 보인다. 경주에서 조선이나 고려라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이 붙어 있어 어제 일처럼 신라의 시간을 유영하고 역사와 신화가 뒤섞이는 감각이 자연스레 몸에 밴다. 장률의 영화를 보며 바로 그 지점을 정확히 짚어 이야기를 풀어낸 것에 전율했다. 영춘화 이야기가 너무 멀리까지 왔다. 돌아갈 수 있을까. 새벽 아직 남은 찬 공기 속에 그녀가 다시 모리화 노래를 불러준다면 소리를 더듬어 그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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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안식 기우제 祈雨祭 ]
어쿠, 나무가 어딧지... oh là là, où est l'atelier nam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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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2 766 41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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