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장 _05 | 비례척
· 고양이와 초벌그림
· 인디안식 기우제
· 유월 첫째 주 노동요 선곡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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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게 무언가를 만든다는 관점에서 설계는 만들어질 공간과 사물의 규격을 하나의 단위 체계로 정하는 일이고 그렇게 그려진 것이 도면이다. 물론 도면에 규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위치와 위상, 얼개와 외연, 관계와 순서, 계통과 흐름, 재료와 공법이 전문 분야에 따른 다양한 선과 기호, 약호와 지시를 쓰고 붙여 그려진다. 다시 말해 도면에 그려지는 모든 것은 치수와 값을 가지며 이것을 매기는 동일한 단위 체계는 분야를 막론하고 기본 전제다. 이 전제 아래 도면은 '일정한 규칙에 따라 프로그램이나 ‘제도기를 써서 기하학적으로 나타낸 그림’1)으로 명백한 지시指示를 담아 그린 자와 만드는 자가 의사소통할 수 있게 둘 사이를 이어주는 연장이 된다.' 2) 이것이 영감과 감각으로 그려지는 회화와 도면이 근본적으로 다른 부분이다.
오늘날 대부분 도면의 단위 체계는 미터법le système métrique3)을 따른다. 미터법이 만들어진 지 이 백여 년이 됐고, 우리가 그것을 쓴 것은 칠십 년을 조금 넘긴다. 일천하다. 까닭은 무언가를 끝없이 만들어왔던 인류의 역사는 도량형度量衡의 역사4)라 바꿔 불러도 무방할 만큼 오래되었고, 미터법은 그 긴 도량형의 역사 끝에서 이제 막 생겨난 것으로 오롯한 최초의 인류적 기준이라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지금 우리는 미터법이 없는 사물의 세계를 상상할 수 없으나 각각의 문화와 나라는 그들 만의 고유한 단위를 사용하였듯이 조선시대 오백 년 동안 지금과 전혀 다른 도량형을 썼다. 그중에 근과 평은 가장 오래 살아남은 유일한 단위일 것이다. 물론 그것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변형된 것이기는 하지만. 더 거슬러 오르면 고구려척高句麗尺은 꽤 오랫동안 쓰였을 뿐 아니라 일본까지 영향을 주었다5)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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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0년, 영조 16년에 만들어졌다는 사각유척四角鍮尺을 보면 '악기를 제작하는 기준이 되는 황종척黃鐘尺, 각종 제사 도구를 만드는 기준인 예기척禮器尺, 과학 측량기구나 관측기구 제작에 사용하는 주척周尺, 건축이나 토지 측량에 사용하는 영조척營造尺, 옷감의 길이를 재는데 쓰인 포백척布帛尺' 6)이 새겨 있다. 이것으로 각각의 분야마다 다른 이유와 그에 따르고 맞는 다른 단위를 사용하였고 거기에 더 해 그 시대에 무엇이 고유한 단위 체계를 가질 만큼 중요한 일이었는지 또한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봐야 하는 것은 어떤 사물 하나가 만들어지기 위해 그 작업 안에서 동일한 단위 체계를 사용한다면 무엇을 만들든 아무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오늘날과 같이 분야가 복잡하게 얽혀 있지 않은 까닭에 가능한 일이라 하더라도 옷을 짓는 데 필요한 치수 단위와 집을 짓는데 필요한 단위가 같을 이유는 없다. 그것이 거리를 재는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예를 들면 조선시대 성을 쌓을 때 영조척이 아니라 포백척을 썼는데 그것은 포백척의 단위가 돌을 다룰 때 더 쓰기 편하였고, 고구려척과 비슷한 단위였다 한다. 대상과 사물에 각기 다른 단위를 사용하는 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인데 천체의 거리를 재는 파섹pc이나 미터를 더 잘게 나눈 나노미터nm가 그러한 예다. 르 꼬르뷔제le corbusier가 '모듈러le modulor'를 통해 유럽의 전통적인 비례와 인간의 신체 단위를 결합해 가구에서 건축, 도시까지 확장되는 새로운 단위 체계를 주창한 것은 또 다른 단위의 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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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지도, 대상지와 도면 사이에 축척이 있다. 땅을 일정한 비율로 줄여 그린 지도나 도면은 영역이 한정되고 폐곡선으로 이어지는 등고선은 높이 값을 갖는다. 길이 이어지고 교차하는 사이로 천과 강이 흐른다. 지명, 산천의 이름과 도로명, 주요 지형지물의 표기, 여기서 더 들어가면 각종 하부 구조물이 기호로 빼곡하다. 대상지를 실측하여 얻은 측량도는 땅에 관한 물리적 사실이 남김없이 기록되어 있어 모든 설계의 시작이다. 이 축소된 기록으로부터 땅의 형상과 물길의 흐름, 식생과 하부 구조의 상태를 읽는다. 그러나 이러한 물리적 사실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설계하는 자에게 축척은 수학적 비례의 문제라기보다 오히려 객관적 인식과 총체적 감각의 문제다. 객관적 인식이란 벗어날 수 없는 사실에 관한 것이며 동시에 숨겨진 관계와 맥락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질서와 혼돈에 관한 것이고 드러난 것과 숨겨진 것에 관한 것이다. 총체적 감각이란 거리와 규모, 형상과 형태를 넘어 감각되는 모든 것을 통해 대상지를 재구축하는 것으로 시간의 흐름을 읽고 멈췄던 대기의 바람과 빛을 모아 대상지를 유기적으로 입체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땅과 지도, 대상지와 도면 사이에서 일어나는 인식적 목도目睹와 감각적 순환循環은 축척의 매개 없이 불가능하다.
설계에서 도면을 그릴 때 쓰는 자는 일반적인 자가 아니라 비례척比例尺을 쓴다. 비례자 또는 비례척, 영어로 스케일scale은 미터법에 따른 거리를 일정한 비율로 줄여서 눈금 매겨 놓은 자다. 설계에서 주로 쓰는 삼각비례자, 일반적으로 삼각스케일이라 부르는 데 세 개의 면에 모두 여섯 개의 서로 다른 축척이 표시되어 있다. 이 여섯 조합은 1/25, 1/50, 1/75, 1/100, 1/125, 1/150, 1/200, 1/250, 1/300, 1/400, 1/500, 1/600, 1/750, 1/800 그리고 1/0.03 | 1/33+(1/3) 중에서 만든 회사와 나라 또는 전문 분야에 맞게 선별 조합된다. 삼각비례자가 보여주는 축척은 실재 거리와 도상의 거리 간에 비율을 나타낸 것으로 1인용 의자에서 10헥타르ha가 넘는 공원까지 에이A1 도면에 구겨 넣을 수 있는 노동력이 집약된 마술을 펼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 땅에 대한 공감각적 인식을 도상에서 직조하고, 도상에서 했던 구축적 사고를 땅에서 풀어내는데 눈금과 눈금 사이에 보이지 않는 틈이 있다. 만약 그니가 운이 좋아 이 신비한 축척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면 이이명李頤命의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8)가 만들어낸 광대한 공간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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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명, 요계관방지도, 1706년 | 숙종32년, 635×139cm, 보물 제1542호,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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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학, 비무장지대, 592x45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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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립국어대사전. https://stdict.korean.go.kr
‘명사 | 토목, 건축, 기계 따위의 구조나 설계 또는 토지, 임야 따위를 제도기를 써서 기하학적으로 나타낸 그림’
2. 이수학 · 정여연 · 김슬기, 태도 III | 소거消去_서소문역사공원 설계 도집設計圖集, 전자책, 아뜰리에나무, 2025. 12쪽.
3.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B%AF%B8%ED%84%B0%EB%B2%9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도량형,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5586
미터법은 1799년 프랑스에서 국가표준으로 할 것을 법령으로 공포했고 1875년 16개국 사이에 처음으로 미터 조약이 체결되었다. 우리나라는 1959년 미터조약에 가입하고 1964년 전면 시행하여 오늘에 이른다.
'오늘날 세계 도량형의 통일된 단위인 미터법은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 미터법의 길이 표준은 지구의 자오선 4천만분의 1로 정하여 1799년 프랑스 표준척으로 공포한 후 프랑스의 끈질긴 노력에 힘입어 국제적인 길이 표준으로 제정된 1m척이다. 이 길이를 기준으로 하여 만든 1,000㎤의 섭씨 4도의 물 무게를 기준으로 하여 만든 1㎏ 원기原器의 무게를 질량의 표준으로 정하였다. 이 두 가지 표준량을 기준으로 하여 십진법으로 만들어진 보조단위제도를 미터법이라고 한다.'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도량형,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5586
'도량형度量衡은 길이 · 부피 · 무게 및 이를 측정하는 도구인 자尺 · 되升 · 저울衡을 말한다. 이것은 인간의 공동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기준이었기 때문에 이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었다. 도량형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이에 대한 정확한 해답은 없지만, 인류가 어느 시점부터 여러 가지 사물을 수량적으로 파악하였을 것이다. 수와 양의 개념을 병행하여 사용한 것은 인간의 필요와 지혜에서 비롯되었을 것이지만, 그것은 갑자기 사용된 것이 아니고, 선사시대부터 대단히 오랜 기간 서서히 준비되었을 것이다.'
5. 유태용, 고구려척에 대한 신연구, https://m.blog.naver.com/jsy1851/221599564528
'고구려척은 고구려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하여 사용하던 고구려 국가의 표준척도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고구려척은 고구려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백제, 신라, 그리고 고대 일본에서도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삼국사기》,《삼국유사》, 또는 금석문과 같은 한국 자료에서는 전혀 고구려척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지 않고, 대신에 일본의 고대 기록들인 《영의해》,《영집해》,《속일본기》,《정사요략》, 그리고《연희식》등에 단편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
이성산성 출토 고구려척은 전체 세 구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즉, 첫 구간은 5개의 마디寸로 나누어져 있고, 각 마디는 다시 5개의 눈금으로 나누어져 있다. 두 번째 구간도 첫째 구간과 마찬가지로 5개의 마디로 나누어져 있으나 눈금으로 세분하여 표시하지는 않았다. 마지막 세 번째 구간은 마디나 눈금 같은 특별한 표시 없이 그대로 두었다. 따라서 이성산성 출토 고구려척의 구조는 다섯 개의 눈금이 모여서 한 마디가 되고, 다섯 마디가 모여서 한 구간이 되며, 다시 세 구간을 합하면 한 자尺가 되는 것이다. 이를 다시 실측자료를 토대로 미터법으로 환산해보면, 고구려척의 한 눈금은 0.474668㎝가 되고, 한 마디는 2.37334㎝가 되며, 한 자(척)는 35.6001㎝이 된다. 따라서 그동안 베일에 쌓여 있던 고구려척의 정확한 용척은 35.6001㎝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6. 사각유척, 고궁박물관, https://www.gogung.go.kr/gogung/bbs/BMSR00019/view.do?boardId=3609&menuNo=800069&pageIndex=&searchCondition=&searchKeyword=
7. le corbusier, le modulor 1 · 2, rééditions de la première éditions publiée par les <éditions de l'architecture d'aujourd'hui> en 1950, 1983.
르 꼬르뷔제, 모듈러_르 꼬르뷔제의 비례론, 박경삼 옮김, 안그라픽스, 1991. 이 책은 '모듈러 1'을 번역한 책이다.
위키백과, 르모듈러, https://ko.wikipedia.org/wiki/%EB%A5%B4%EB%AA%A8%EB%93%88%EB%9F%AC
8. 1706년, 숙종32년 이이명이 제작한 10폭의 병풍에 실린 지도, 북경 서쪽의 구릉 지역부터 동해까지 중국과 연해주의 국경 지역을 한 폭의 파노라마로 보여준다. 전체 635×139cm, 보물 제1542호,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개리 레드야드Gari Keith Ledyard, 한국의 고지도의 역사, 장상훈 옮김, 소나무, 2011, 331-340쪽에서 자세한 설명을 읽을 수 있다.
9. 이수학, 태도Ⅰ, 아뜰리에나무, 2023, 31_32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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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량용수직접자, 5m · 20m · 30m · 50m 줄자, 지름자, 바퀴자, 2026. 06.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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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cm 쇠자, 15cm 플라스틱자, 15cm 테이트모던미술관 대나무자, 30cm 대나무자, 30cm 의궤그림플라스틱자,
30cm 방안플라스틱자, 30cm 삼각알루미늄자, 버니어캘리퍼스vernier callipers, 2026. 06.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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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축척과 모양의 삼각비례척과 수평비례척, 2026 06.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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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꼴라예비치 므이시낀과 임실 창의문화거점공간 주변 정비사업 식재계획 초벌그림, 2023. 0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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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안식 기우제 祈雨祭 ]
왜 아뜰리에나무지... mais pourquoi l'atelier nam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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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월 첫째 주 노동요 선곡표 ]
'····· 아따- 물이다.... 풍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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