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문화제조창 공예관 옥상정원은 떠돌던 풀씨의 거쳐가 되었다. 배롱나무는 반쯤 고사목이 되었고 수크렁은 각자도생으로 흩어져 살아남았다. 그 외의 자리는 호명되지 못했던 풀들의 자리가 되었다. 목재데크와 콘크리트 포장 면에 발라 놓은 페인트칠 말고 가끔 물만 주면 더 없는 거친 풀의 정원wile garden이 될 텐데. 배수아의 소설 '속삭임 우묵한 정원'은 같은 문장이 반복되고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만 다음에 반복되는 문장은 처음 문장과 조금 다르고 상황도 조금 달라지는 나선 궤적을 그린다. 정원도 그러하다. 일 년을 주기로 같은 때에 잎이 나고 꽃이 피지만 작년 꽃이 핀 자리와 올해의 잎사귀는 슬며시 자리를 바꾼다. 목재와 철판, 콘크리트로 만든 용골龍骨 사이에 풀은 사람의 개입만 없다면 소설 속 속삭임처럼 언제까지고 흔들릴 것이다.
층층나무를 처음 만난 것은 문경 정토수련원이다. 시주받아 심어 놓았는데 너무 빨리 크게 자란다고 스님은 걱정하셨다. 두 번째로 만난 것은 대관령 하늘목장에서다. 나중에 꽃섶길로 이름 지은 그 길 한켠, 작은 계곡을 이루는 개울가 숲 자락 한가운데 층층나무가 장하게 그늘을 짓고 있었다. 그 아래 홀아비바람꽃이며 큰앵초가 자라고 설계하는 동안 두어 번 그 아래서 아영했었다. 세 번째 무산된 만남은 서소문역사공원 칠패로와 면한 가로는 원래 층층나무를 심도록 계획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공하면서 나무가 바뀌었다. 층층나무는 이름 그대로 가지가 층을 이루면서 자라 옆으로 길게 뻗는 까닭에 폭목暴木이라 불리기도 한단다. 오월에 하얀 꽃이 피고 겨울이면 동그란 작은 열매가 겨울 눈 속에 검은 꽃처럼 흐드러진다.